“아마 계획대로였으면, 지금 인사동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어느 조각가의 전시가 이 집에서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집 주변을 휘감은 호수로 이어지는 근사한 조각 공원이 만들어졌을 거예요.” 어떤 연유에서인지 집 짓는 계획이 슬며시 수그러들고 호수 조각 공원도 사라졌지만, 여전히 때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건축주는 원래 거주하던 공간이 골프장으로 개발되면서 급하게 서둘러 땅을 구해 집과 작업 공간을 마련하는 설계를 의뢰해 왔었다. ‘집이면서도 작업실이자 갤러리’까지, 그리고 조각 같은 건축물이었으면 했다. 건축에 안목 있고 눈 높은 건축주였다.
“설계를 시작하기 전에, 처음부터 건축주와 계속 이야기만 했어요. 건축주가 ‘왜 뭔가 보여 주지 않느냐’라고 말하기 전까지요. ‘이런 방향과 컨셉트로 해야겠구나’ 하는 큰 틀이 정해지는 문법은 아주 빨리 만드는 편이라서, 오히려 건축주와 얘기를 하면서 문장을 만들 단어들을 찾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문법을 뒤집는 대안보다는, 건축주에게 맞는 하나의 안으로 계속 발전시켜 나가게 돼요. 2~3번 미팅을 하면 정리가 되는 편인데, 그러면 앞으로 제가 설계를 풀어 가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죠. 보통 주택 설계안이 완성되기까지 열 차례 이상 미팅을 가지면서 6개월 정도 걸리는데, 이 주택은 4개월 만에 안이 완성되었어요.”
건축가가 주택 설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과정을 풀어내면서, 이 집 주인의 작업이라며 보여주는 조각 작품은 설계한 집의 입면과 패턴이 비슷하였다. 두꺼운 철판을 잘라 다시 원래 형태를 따라 붙이면서 기하학적인 틈을 만들어 내는 건축주의 조형 작업이 작업실의 외벽에 그대로 구현된 것이었다.
주요 투시 전경 (건축가 제공)
“건축주는 조각을 하시는 분인데, 개인 주택을 비롯해, 작업실과 갤러리, 그리고 부속 공간들을 요구하셨어요. 대지가 200평 정도 되지만, 들어가야 할 3~4개의 프로그램을 모두 합하니 매스가 대지에 비해 아주 커졌어요. 더욱이 대지가 이형이라 제일 큰 매스인 작업실을 넣고 나니, 디자인이 안 될 듯싶었죠. 그래서 처음부터 출발은 각 프로그램의 매스를 모듈화 시켜, 매스를 누적시키는 개념을 전개해 갔어요. 위쪽에 주거를 놓고, 아래쪽으로 작업실과 부속 공간들, 갤러리를 두는 식으로요. 그리고 가장 큰 작업실을 틀어 놓아 최대한 장 스팬을 갖도록 했죠.”
조각가의 작업실이란 것이, 주로 육중한 철판을 자르고 붙이는 일이 한 공간 안에서 벌어지고 환경 조형물 정도의 스케일 큰 작업이 이루어지다 보니, 천장고가 8m까지 된다. 지하층을 파서 작업실 놓고, 철판의 제단과 용접을 도와주는 전문가가 거주하는 공간, 그리고 학생들의 개인 작업실을 더해 게스트 하우스 겸 작업실을 하나의 매스로 놓았다. 그 위에 주인 개인 작업실 겸 갤러리, 마당이 펼쳐진다. 그리고 2층부터는 건축주의 완전한 독립실이자 사적 공간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컨셉트를 풀기 위해, 매스를 분절시키는 디테일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작업실과 주거가 위아래로 적층돼, 매스가 붙어 있거나 박히는 느낌이 될 수 있거든요. 두 매스가 떨어져 보이도록 매스와 매스 사이에 보를 올리고, 주거 부분은 2m 상당의 캔틸레버를 넣었죠.”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것은 많은 프로그램을 대지 안에 넣기 위해 매스들을 분절하고 중첩시키면서 강하게 드러나는 조형성이다. 정작 복잡한 프로그램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잘 드러나지가 않는다. 작업실에서 썬큰으로, 그리고 주거로, 다시 갤러리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동선은 이 집의 터미널과도 같은 중정을 통해서다. 좀더 내부로 들어가면 길게 늘어뜨려진 수직, 수평 동선과 용도가 불분명하고 애매한 공간들이 등장한다. 늘어진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전시 벽면과 맞닥뜨리거나 프레임을 통해 마당을 보면 또 하나의 옥외 갤러리가 만들어져 있다. 분절과 중첩의 건축적인 특성은 이런 곳에서 발견이 된다. 실지로 갤러리라는 건축 프로그램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건축가의 말에 의하면 그 애매함은 ‘로스’가 아니라 여기저기 공간을 ‘플러스’ 해 줄 것들이다.
“이 애매한 공간은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 들어가도 어느 정도는 수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용도가 정해지지 않는 공간은 줄이기를 바라지만, 버린 것 같아도 그로 인해 얻는 것이 있어요. 그 공간이 얼마나 건축적인 얘기를 풍요롭게 해줄까 하는 거죠. 그리고 동선이 잘 풀려 있으면 주택이든, 갤러리나 매장이든, 다른 용도의 프로그램이 섞이거나 개조를 해도 자연스럽고 그러면서 비슷한 공간의 얘기를 가질 수 있답니다.”
목적이 명확한 오피스나 근생 시설에 반해, 주택은 법이나 경제성 같은 현실적인 것으로부터 그나마 자유로운 곳일 것이다. 면적이 많이 나와야 하고 임대가 잘 돼야 하지만, 면적이 줄더라도 좋은 공간을 더 선호하는 최근의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건축가들은 자신의 건축 언어를 표현할 수 있는 좋은 공간으로 주택을 여기게 될 것이다. 이 집의 건축가가 주택 설계에서 ‘문장을 만들기 위해 단어를 찾는다’는 것은 이 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건축주 본인이 직접 살아야 하잖아요. 주택은 건축주가 갖는 집착도가 높기 때문에, 결국에 형태나 공간을 만들기 이전에 거기에 담겨야 할 중요한 것이 있어요.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건축주의 시간입니다. 지금 건축주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앞으로도 여전히 유효한 공간이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지게 되죠. 앞으로 이 집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예요. 사람의 취향에 맞는 소품들이 살면서 매번 바뀔 수 있듯이, 살면서 대부분 변하는 것들이겠죠. 그래서 주거에 담아내야 할 모든 것에는 시간의 개념이 들어가야 한다고 봐요. 이 집에서는 갤러리였고 건축주가 아주 구체적으로 요구를 했었죠. 어떻게 보면 주택은 건축 설계만이 아니라, 인생 설계, 라이프 스타일 설계를 병행해야 정말로 그 공간이 작동되는 것이죠.”
글 강권정예 기자 jeongye골뱅이hotmail쩜com
<와이드> 7-8월호 pp.10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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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ulpture Studio Hausㅣ이기옥
위치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용설리 516-6ㅣ대지 면적 : 684.00㎡ㅣ건축 면적 : 265.85㎡ ㅣ연면적 : 913.94㎡ㅣ건폐율 : 38.87%ㅣ용적률 : 69.79%ㅣ규모 : 지하1층/지상3층ㅣ외부마감 : 노출콘크리트, IPE, C-BLACK, 복층유리ㅣ내부마감 : 온돌마루, 실크벽지, 친환경페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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