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제목 : 기획초대展 “김재경_시간의 더께”

전시일자 : 2013년 11월 2일(토)~2014년 1월 12일(일)

전시장소 : 지앤아트스페이스 본관 갤러리 전관 (백남준 아트센터 맞은편)

전시문의 : 지앤아트스페이스 전시팀/ 송철민 (010-3799-1075)/ 김가영 (010-9179-0277)

 

사진가 김재경의 눈으로 찾아내고 기록한 시간의 더께

 

동시대 가장 주목받고 있는 건축사진가로 활동 중인 김재경의 사진전 “시간의 더께”가 용인 지앤아트스페이스(관장 지종진)에서 11월 2일부터 내년 1월 12일까지 약 두 달간 열린다.

 

지앤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인문학적 감각과 절제된 심미성이 돋보이는 작가의 초기작으로부터 지앤아트스페이스의 큐레이터 송철민씨가 “리얼리즘과 추상의 융합”이라 표현하고 있는 근작들에 이르기까지 그가 건축가나 건축주로부터 의뢰받아 작업해오던 현대건축물들과 대척점에 위치하는 대상들을 “시간의 더께”라는 타이틀로 조명하게 된다.

 

그가 피사체로 삼고 있는 여러 대상들은 주로 오래된 건물이나 골목의 풍경으로 그의 작품에는 사람이 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사진이 사람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비어있는 절간이나 고택의 마당과 도시의 텅 빈 골목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흔적, 사람의 손길과 마음과 생각들이었다.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시간이 흘러간 후에 미처 휘발되지 못하고 남겨져 묵묵하고도 단단히 내려앉은 ‘더께’들은 무수한 기억들을 불러일으키고 작가는 흔적들의 관계를 통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site의 관계성을 이해하고 그 장소에 겹겹이 쌓인 자연환경과 광범위한 인문적 환경들이 만들어내는 퇴적층에 대한 해석에 있어 탁월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는 수동기사로부터 시작된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프린트의 기술적 완성도 위에 여러 층으로 쌓여 있는 연속적 관계들에서 본질을 추출하고 이를 적절히 분할된 화면에 병치시키는 입체적 내러티브를 통해 김재경식 미장센Mise-en-Scène을 구축하고 있다.

 

시각예술, 특히나 추상회화나 조각은 소설처럼 스토리를 구체적으로 서술하지는 않지만 백 마디 말로 말하고자 했던 것을 집약한(추상화한) 이미지로 단숨에 전달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렇기에 추상예술은 타 장르의 예술보다 즉시적이고 강력하게 원초적인 본질에 다다르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MuteⅡ의 사진들은 그러한 추상의 힘에 더하여 사진의 사실성과 객관성을 바탕한 리얼리즘의 힘이 화면의 저변에 깔리면서 그야말로 경탄할 만큼 묵직하고 강렬한 미장센을 만들어낸다. 그가 피사체로 택했던 보잘것없이 누추한 산동네의 골목풍경은 21세기 실존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즘미학의 가치를 넘어 병치되는 추상성과 융합하면서, 추상과 리얼리즘이라는 극단에 위치하는 개념들이 한 화면에 그저 혼합 또는 조화되는 것이 아니라, 화학적 반응-융합하면서 사진역사상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표현을 낳게 된다.

 

그의 아름다운 미장센은 그런 방식으로 추상적 리얼리즘이라 수식할 만한 알레고리를 통해 미학적 가치와 사회적 메시지를 내밀하게 드러내게 되며 그것들을 연출하는 기법에 있어서, 고졸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막사발과도 같이 무심하고도 객관적인 3인칭 관찰자시점의 심리적 거리감을 유지함으로써, 흑백사진이라는 현실과 약간의 거리감을 보여주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무언의muted 상황을 더욱 애잔하게 연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리얼리즘적 화면으로 사진의 정통성을 추구하면서도 이들의 본질을 추출한 추상과의 융합이 어떻게 이들을 극대화시키고 새롭고 강렬한 미장센을 탄생시키게 되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로 구성하였으며 이번 전시에는 그가 그동안 발표해왔던 작품들 중 MuteⅡ 시리즈 중에서 충신동, 약수동, 동숭동 등의 골목을 파노라마 카메라로 촬영한 4점과 “자연과 건축”으로 발표되었던 3점 가량의 작품이 대형 프린트로 전시되는 등 총 50여점의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다.

 

전시기간 중 연계 프로그램으로 아마추어 사진가를 위한 사진클리닉 (11월 14일)과 작가와의 대담(11월 21일)이 마련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 홈페이지 참조)

 

작가가 사진에 첫발을 내딛은 것은 80년대에 현상소의 수동기사로 일하면서 부터이다. 많은 작가들이 대학에서 전공을 하고 유학을 다녀와서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는 것에 반해 작가는 현장에서 독학으로 사진을 배우고 어렵게 구한 서적들의 이론을 현장에서 적용하면서 그야말로 탄탄한 기초를 다졌다. 여의도에 위치했던 유명 건축사무소를 단골손님으로, 의뢰된 작업을 진행하던 그는 건축사진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고 그 당시에 익힌 존 시스템 Zone System은 이후 그의 작업에서 풍부한 계조를 만들어 보다 깊은 화면을 구성하는데 기여한다. 이후 건축잡지 “플러스”에서의 기자생활을 거쳐 현재는 건축사진전문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며, 94년 첫 개인전 “건축사진”展 이후 다섯 번의 개인전과 여러 기획전을 통해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첫 개인전이 기존의 건축에 관한 사진이라면 두 번째 개인전인 “자연과 건축”展 이후부터는 건축물 자체에서 확장된 시각으로 이를 둘러싼 다양한 환경들과의 관계를 그려내는 것에 집중해 왔다.

 

1998년 “한국건축드림팀 11인”에 사진작가로 선정되었으며 사진집 “자연과 건축”, “Mute", "MuteⅡ: 봉인된 시간”, “건축도시기행(공저)” 등이 있고 저서로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건축사진에 대한 철학을 현장노트 형식으로 풀어낸 “셧클락 건축을 품다”(효형출판)를 출간하였으며 2003년 한미문화예술재단에서 주는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바 있다.

 

김재경전 전시 안내.hwp

 


 


(기자설명회)지속가능한 서울 건축 기본원칙 서울건축선언.hwp




0. 영화 <집 없는 천사> 


배경은 대동아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 고아원 향린원(香隣園)를 배경으로 그려지는 다큐(?). 감독은 최인규, 우익 계열이고 고려영화사 제작. 시나리오는 일본인.. 





1. 최고의 친일영화 


<집 없는 천사>가 다른 많은 친일영화에 비해 친일성이 약하다는 평가가 있으나, 어느 친일 영화보다 친일성이 강함. 친일성이 약하다는 것은 영화 속의 친일행위가 직설적이고 노골적이거나 적나라하지 않다는 것일뿐. 영화 속 인물, 이야기 전개, 갈등 구조 등이 비유/은유, 상징/메타포로 숨겨진 친일 코드와 아주 정교하고 치밀하게 잘 짜여 있음. 오히려 영화를 보는 한국인은 (노골적인 표현이 없어)거부감없이 영화에 몰입하고, 스스로 열등감 생성하고 약자화 하고,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이데올로기에 동조하게 만든다. 




2. 영화 속의 도시 경성 


영화의 무대는 경성. 1940년대 초 경성은 중일전쟁의 여파로 최고의 호황을 누림.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특히 화려하고 현란했던 밤거리가 1940년대 경제상황을 얘기. 




-> 경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서울을 지칭하여 사용된 말이고 조선 건국초기 문헌에서 여러 번 나옴. 한성, 한양, 서울... 여러 지명이 동시에 사용. 여기서 중요 포인트는 많은 지명 가운데, 왜 경성이라는 말을 일본인들이 사용하였는가 하는 것. 경성은 서울경+성성의 조어로, 일본인들이 보기에 독특한(일본의 성이 있는 도시와는 많이 다른) 도시구조를 갖고 있던 서울의 특성을 잘 표현해주었던 말, 서울의 외형적 특성을 주요하게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안창모의 주장. 



 3. 도시에서 어린이 

-> 근대시기 도시에서 어린이. 산혁시기 어린이. 어른 노동의 보충력, 노동착취 대상의 하나. 어린이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내포하는 존재. 영화 속 어린이. 어린이에 대한 상반된 인식/의미구조. 

근대도시 경성에서 어린이. 나약하고 보살펴야 (환락의 거리를 떠돌며 앵벌이 하는 고아들) 할 존재. 그래서 집단 격리 수용(영화 속 고아원인 향린원은 종로에서30리 떨어짐)하여 황국신민이 되기 위해 교화(막지막부분에 황국신민선서가 압권) 하여야 할 대상 존재= 한국인을 상징. 어른은 어린이를 보살피는 일본인을 상징. 보기엔 부산 형제원 사건이 겹치면서, 사탕발림을 서슴치 않는 어린이 유괴범이나, 아동노동 착취하는 범죄자 같더라..


-> 향린원 고아중 둘은 밤거리가 그리워 탈출을 감행하지만, 오히려 친구를 물에 빠뜨려 목숨을 위태롭게 함. 반성모드로 수십리를 달려 의사를 불러옴. 의사를 따라온 간호조무인은 헤어졌던 남동생과 향린원에서 극적인 만남. 고아들의 혈육상봉. 


-> 엿장수의 꾐에 빠져 주전자를 엿바꿔 먹는 아이, 잘못을 뉘우치고 몇날 동안 앵벌이, 새로운 주전자를 사서 당당히 고아원으로 회귀 -> 돌아온 탕아! 이를 칭찬하는 어른들(목사, 의사, 간호사 등)





3. 새로운 시대 새로운 도시. 산업혁명의 무대 도시의 등장. 


여느 유럽도시가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성장하는 것과 근대 도시 경성의 성장은 성격이 다름. 유럽산혁은 산업시설(대표적으로 섬유공장), 자본의 축적, 인구집중, 도시변화... 특히 경성에는 공장이 없었고(한반도의 많은 공업도시들 역시 군수산업기반), 환락/유흥산업, 소비시설 -> 백화점, 극장, 박람회장... 등이 먼저 등장.축적(?)된 자본역시 일인들에게 집중... -> 즉 병참기지화 도시로서 경성. 당시 사회경제적 기반과 도시구조의 변화는 관련이 있다. 어떤 것이냐면.. 










4. 병참기지화와 도시구조 변화 

1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



5. 에피소드. 경성에 대한 일본인의 향수. 

조심하라, 국내 일본 우익 건축가. 최근의 도시건축 전시 사례. 


continued.....





1. 미몽

제작년도 1936년이고 현존하는 최고(오래된)의 영화. 그외 영화사에서도 여러모로 의미가 큰 영화. 경성촬영소. 동양극장. 미몽의 영문표기는 sweet dream, 한자로는 迷夢, '헛된 꿈'으로 해석하기도.  


2. 줄거리

주인공 애순(문예봉, 욕망 쾌락 신경질적인 캐릭터)은 남편과의 갈등이 있다. 딸아이의 옷을 사러 간 백화점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계속되는 남편과의 갈등, 그리고 애순은 집을 떠난다. 한 남자(애인)와의 생활은 호텔. 그러는 동안 엄마 애순의 빈 자리가 딸아이를 통해 드러남-> 나쁜 여자. (또 남성의 입을 통해 부정적인 징후로 계속 얘기되고 암시) 

그리고 동양극장에서 현대무용을 관란하는 애순. 거리낌없이 남자 무용수에게 팬심을 표현하는 애순. 그리고 말없이 극장을 먼저 떠난 애인이 가난하고 범죄와 연루돼 있다는 사실을 애순을 알게 된다. 애순은 애인을 신고하고, 무용수를 쫒아 기차역으로 향한다. 무용수가 탄 기차를 꼭 타야 한다며 택시 기사를 계속 다그치는 애순,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는 시청 서울역 남영동 만리동 일대 풍경. 서울역 기차를 놓치고 용산역을 향해 질주하던 중, 결국 교통사고가 난다. 차에 치인 사람은 안타깝게도 애순의 딸. 

다행히 딸아이는 무사하고 입원 치료, 애슌이 간호하던 중 자신의 처지에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권총을 들고 뛰어오는 남편. 남편이 도착하기 전, 애순의 음독자살로 영화는 끝난다. 


3. 도시 

욕망을 그리는 공간들. 백화점 호텔 극장 택시...  욕망을 따라 가정을 벗어난, 애순을 호시탐탐 노리는 낯선 남자들. 도시에서 애순은 위험을 야기할 존재. 그러나 애순의 욕망. 조롱 속의 새가 될 수 없어, 라고 하며 애순은 가부장적이고 유교적 전통사회와 명확한 선을 긋는다. 하지만 욕망을 따라 간 도시에는 애순을 도사리는 온갖 위험, 질시, 파멸로 이어지는 불길한 징후들.. 결국 자유를 찾아 조롱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죽음뿐. 남편의 손에 죽느니, 음독자살을 택한 것도 그 때문... 


 

 



열린 도시의 최종심급,
외국인 밀집 주거지역 안산 원곡동



키릴 문자로 된 간판이 빼곡하고, 한 여름에도 전시되는 무스탕, 두꺼운 장갑들로 자연스레 러시아를 연상하게 되는 부산 초량동의 외국인 상가 거리(텍사스거리)는 인근 차이나타운(상해거리)과 함께 이국적인 풍취를 자아낸다. 외국인 밀집 지역 가운데에서도 조계지, 외국 군대, 사원 등이 계기가 되어 외국 관련 시설의 주변 지역에 형성된 유형이다. 인천의 차이나타운 역시 같은 유형이며, 이들 모두는 상업지역으로 형성되었다. 이태원 관광 특구와 이슬람 중앙성원이 있는 이슬람 거리, 한남동 외국인 마을, 혜화동 필리핀 장터들은 각국의 대사관이나 문화원, 종교 시설을 중심으로 형성된 외국인 밀집 지역이다. 혜화동 필리핀 장터는 혜화동 성당에서 필리핀인들을 위한 미사가 마련되면서 주말 나들이를 나온 외국인들이 장터를 벌이는 곳이다.

그리고 서울의 ‘작은 프랑스’와 ‘리틀 도쿄’라 불리는 서래마을과 동부이촌동의 일본인 마을은 학교, 대사관이나 각국의 한국 주재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외국인 주거지이다. 한성 화교학교가 있는 연남/연희동 차이나타운도 비슷하다. 광희동 러시아/중앙아시아촌, 창신동 네팔인촌 등은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의 보따리 상들이 동대문 일대 의류 시장을 찾기 시작하면서 서울 중구 광희동 일대는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촌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거주하지는 않으면서 정보 교환의 거점이 되는 광희동 몽골 타운과 같은 경우도 있다. 가리봉동 조선족 거리, 대림동 조선족 마을, 자양동 조선족 거리는 안산시 원곡동과 같이 대규모 산업 단지 주변에 형성된 거주지가 있고, 유사하게는 남양주 마곡에도 형성돼 있다.

국내 외국인 밀집 지역이 몇 곳인지에 대한 정확한 집계는 없으나,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도되는 것들 가운데 대표적인 곳들이고 대부분 1990년대 들어 눈에 띄게 형성된 지역들이다. 대체로 외국인 노동자는 주로 산업 단지 주변에, 결혼 이민자는 전국적으로, 유학생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전문 인력은 대도시 중심으로 분포한다. 국적별로 분포하는 공간의 특징 역시 차별화된다는 분석이 있다. 그 중 외국인 노동자 밀집 주거지로 대표적인 곳이 안산 원곡동인데, 반월공단이라는 산업 단지 주변의 노동자 배후 주거지 유형을 대표하며,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 밀집 지역으로 가장 상징성이 높은 지역이다. 2005년부터 시 정부가 다문화를 ‘사업화’하면서 관심을 보이고 있고, 40여 개의 시민단체들이 이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중 <지구인의 정거장>은 김이찬 감독이 운영하는 안산영상프로덕션이고, <국경 없는 마을>은 박천응 목사가 운영하는 이주민센터이다. 공교롭게도 서로 다른 두 이름에는 다국적 시민들의 정주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이 담겨 있다. 관련 자료 제공/김용승+임지택(한양대학교 건축학부)

인사이트 아시아 & 인사이트 안산

안산역에서 원곡동 사무소까지 이르는 약 400m 거리, ‘국경 없는 거리’라 불리는 이곳을 중심으로 낯설고 독특한 풍경들이 가득하다. 열대 과일과 각종 허브를 파는 식료품점, 유독 눈에 많이 띄는 이동전화 대리점과 전화방, 블록의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은행들, 일자리를 소개해 주는 용역 회사와 월셋방 임대 거래가 이루어지는 부동산업체들이 거리의 이면에 밀집해 있다. 다른 골목으로 돌아 들어가면 연변식 오리 고기와 전문 음식점이 아니면 쉽게 접할 수 없는 개고기가 시장에서 사고팔리고, 사천식, 태국식, 베트남식 면요리 음식점 등, 문화권별로 독특한 먹거리와 풍물들이 600×600m의 블록 안에 집적돼 있다.

이 지역의 주말은 다른 지역에서 원정 오는 외국인들로 특히나 더 붐빈다. 특별히 이곳으로 모이는 이유는 자국의 언어로 의사소통이 되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생활에 필요한 정보와 각종 인프라가 지원되기 때문이다. 주택 임대료가 저렴하고 교통이 편리하다. 사실상 안산 원곡동이 외국인 노동자 밀집 주거지역으로는 국내에서 최대 규모로, 등록 외국인을 기준으로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의 국적은 60개국에 이른다. 그러면서도 절대 다수가 한국계 중국인(조선족)으로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거주하는 외국인 분포에서는 양극화된 다양함이 존재한다.

1990년에는 대만, 미국, 일본 국적의 순의 외국인이 전체 87%를 차지, 중국은 0.3%에 불과하였다. 1990년대 중반 한중 수교와 외국인 노동자 유입에 따라 이러한 구도는 바뀌어 2008년 기준 중국 국적은 전체 외국인의 절반을 넘는다. 특히 중국 국적 중 한국계 중국인의 비중이 2000년 이후 급상승하여 전체의 42.5%를 차지한다. 그리고 한국계 중국인의 체류 자격은 노동자의 비중이 83.6%로 압도적이다(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연보). 한국계 중국인들은 한족 중국인들과는 달리,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고, 한국 문화에 익숙하여 한족 중국인이 종사할 수 없는 서비스 활동-요식업, 가사도우미, 간병인, 건설 노동자 등에 종사하고 있다.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한국계 중국인은 한국인에 의한 차별을 경험하기도 하며, 중국인 혹은 이등 시민으로 인식되어, 결국 스스로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도판 1. 내국인 외국인 인구 변화 추이
도판 2. 외국인 체류 자격별 현황

원곡동에 대해 안산시가 특별한 시선을 보인 것은 지난 2009년 기획재정부가 다문화특구로 승인하면서 부터이다. 안산시의 다문화특구는 원곡동 795번지 일원(367,541m2)으로, 총사업비 186억 원을 들여 특구 지역 내 다문화원 건립, 특화거리 조성, 외국계 음식점 관광식당화, 세계 전통 민속축제 개최 등 다양한 사업을 2013년까지 추진할 계획이다. 일차적으로 안산역 환승센터와 간판 정비, 국경 없는 거리와 만남의 광장을 조성하는 사업이 진행되었다. 또한 안산시청 앞의 ‘25시 광장’과 같이 도시 곳곳에 25시를 붙여, ‘25시 도시 안산’을 안산시의 별칭 혹은 캐치프레이즈로 사용한다. 쉬지 않고 항상 깨어 있다는 의미로 안산 시정이 이를 표방하며, 실제 원곡동의 주민 센터와 관련 기관들은 휴일에도 업무를 보고 있다. 특히 은행들은 본국으로 송금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휴일에도 개점을 하고, 내국인의 은행 업무는 보지 않기도 한다. 안산이라는 도시의 캐릭터가 외국인들의 삶과 무관하지 않으며, 적어도 안산시는 그것과 연관짓고 싶어한다.

도판 3. 다문화특구정책사업 01
도판 4. 다문화특구정책사업 02

이주민과 노동자의 도시 공간 

안산시에 거주하는 등록 외국인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6% 정도다(2011년 10월 안산시 동별 인구 현황). 다른 도시에 비해 높은 편인데, 사회 변화와 정책적 요인들이 개입돼 있다. 안산이라는 도시의 형성이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안산은 1970, 80년대 수도권의 인구와 산업의 분산 배치를 위해 조성된 반월공단과 시화공단과 함께 공단 배후 주거지로 계획된 도시이며, 특히 원곡동은 이주민들의 집단 주거지로 형성되었다. 때문에 원곡동은 그 과정과 문제를 집약해 놓고 있다. 원곡동이 형성될 당시만 해도 수원에서 인천까지 가는 협궤 열차가 원곡역을 지나갔으며, 일대는 농지를 정리하면서 원주민들을 몰아 집단 거주지로 형성하면서 단층집들이 대량 건설되었고, 이주민 단지라고 불리기도 했다. 현재에도 원곡동 지역의 중심과 기점이 되는 곳의 이름은 ‘주택사거리’이다.

그러나 원곡동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른바 3D 업종 기피 현상이 보편화되면서, 공단의 쇠락과 함께 지역 자체가 쇠락의 길을 걷기도 했다. 공장 노동이 기피되고 취업 노동자 수가 감소하고 원곡동에도 새로이 유입되는 노동자 수가 줄기 시작한다. 특히 현재의 안산이 중앙역 부근으로 상권이 이동하면서, 급속히 공동화되기 시작하였다. 당시부터 지금까지 거주하고 있는 한 주민은 그 당시 오토바이 티켓 다방과 같은 성매매업소가 있기도 했다며, 지역이 슬럼화되던 시절을 기억한다. 그것이 1990년대 중반 이후 IMF 이전까지이다.

국내 노동자의 퇴거로 인해 원곡동 일대가 급속히 공동화되던 즈음, 빈방이 늘어나자 주택 임대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던 대부분의 주택 소유주인 한국인 원주민들은 파산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방을 내주기 시작한다. 정책적으로 대거 유입된 외국인 노동자들이 원곡동 일대에 거주하게 된다. 이것이 외국인 노동자가 원곡동 일대에 거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상 한국인 이주민들에 의해 형성된 원곡동은 IMF 이후 이주 노동자들이 다시 거주하게 되며, 현재에 이른다. 한편 외국인 밀집 지역 가운데 거주지로 형성되어 있는 서래마을과 가리봉동/대림동 지역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나는 내 이웃을 증오한다

지역의 구성원이 바뀌고 환경이 변화하는 것은 주거지와 함께 상업 공간과 커뮤니티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우선 외국인들의 고유한 식성과 기호를 공략하는 상점들이 그것이다. 중국을 비롯한 여러 동남아 상점들이 성업 중이고, 휴대폰 대리점, 그리고 송금을 위한 은행들의 입점도 늘었다. 또한 근래에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소개해 주는 용역 회사가 40여 곳에 이르고, 월세방 임대업이 왕성해지면서 부동산도 35여 곳으로 늘어났다. 이밖에 재활용 옷가게, 재활용 가전제품점 등 값싸고 실용적인 상품들이 인기가 많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 원곡동에 비해 근린상권이 주거 환경에 친화적인 방향으로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변화의 양상이 공공 자본이 투입돼 형성된 공공 공간과 거주민의 커뮤니티에서도 발견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안산 다문화포럼에서는 다문화특구 정책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국경 없는 거리’의 공간 사용 실태가 점차 사유화되어가고 있다는 것, 이 점에 대해 지역 원주민과 이주민들 사이의 인식 차이가 뚜렷하고 점차 갈등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발표하였다(YMCA 좋은 마을 만들기 지원센터와 한양대 다문화중심도시연구단의 협력으로 진행된 마을 디자인 대학의 모니터링과 실태조사 결과). 가로에 면해 있는 상점들이 내어 놓는 가판대와 이주민들의 노점들이 ‘국경 없는 거리’를 점유하며, 거리의 설치물들이 오히려 보행에 방해물이 되기에 이르렀다. 실제 대지경계선을 표시하기 위해 설치된 돌은 노점들이 그 위에서 물건을 두고 팔기도 하며, 고정되지 않아 이리저리 가로를 계속 움직여 다닌다. 또 하나의 정책 사업인 ‘만남의 광장’이 국적별로 만남의 장소가 따로 구분돼 있던 것을 하나의 광장으로 조성하면서, 이주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한국계 중국인이 ‘만남의 광장’을 점유하고 있다. 광장 내에서도 놀이를 위해 필요에 따라 바닥에 선을 그리거나 그림을 그리고 나면, 자치위원회나 정부에서는 무단으로 그려진 선을 끊임없이 지우지만, 또 다시 덧그리는 식의 끊임없는 숨바꼭질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이주 노동자들이 대거 몰리는 주말에 더욱 심화되어, 지역민들 간의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도판 5. 현황사진 폴더 안의 사진들

그 갈등은 쓰레기 문제에서 다시 한 번 극적으로 드러나며, 쓰레기 종량제를 실시하는 한국의 사회적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한 한국인들의 불만과 이주 노동자에 대한 낙인 효과가 뒤엉켜, 한국인 주민들에게 외국인 증가는 기존 사회질서의 붕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시 정부의 정책이나 예산 집행이 한국인에 대한 역차별이란 피해 의식도 강하다. 그럼에도 외국인의 존재가 점차 지역 경제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면서, 이를 어쩔 수 없이 수용하고 있다. 반면 이주 노동자에 대한 낙인이나 한국계 중국인에 대한 이중적인 인식은 탈낙인의 의지나 노력, 지역에 대한 정주 의식이나 애착이 없어, 한국인 주민과의 상호 인정과 교류가 그리 활발하지 않고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다문화 특구 지정 정책 사업에 대해 지나치게 물리적 정비 위주이고 성과 중심적이라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20년 가까이 ‘국경 없는 마을’ 운동과 이주민센터를 운영해오고 있는 박천응 목사는 다문화특구의 기획은 그 기초가 상업성과 시장성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국적인 것으로 시장을 활성화하려 한다면 이곳은 중국 일색이 돼버릴 겁니다. 다문화의 특성은 다양성에 있는데 말입니다. 다양성을 획일성으로 바꾸는 정책이 가시적으로 가장 많이 드러나는 것이 도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디자인 영역입니다. 도로만 깨끗하다고 해서 살기 좋은 마을이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도시 미관을 위해서라면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것이에요. 국경 없는 마을을 잘 디자인하려면, 스토리 개발부터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횡량한 빈 터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찾습니다. 스토리는 하드웨어를 더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마을을 디자인하려는 의도성과 지나친 개입보다는, 내버려 두고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방향을 잡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오히려 다양한 것들이 살아 숨쉬는 마을이 이주민에게도 좋고 한국인에게도 더 좋을 것입니다. 다양함을 통해 새로움을 배울 수 있고 수용할 수 있는 곳이 되고, 또 한 측면에서는 미처 생각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기회를 제공하며 뒤집어 보기나 틈새 보기 같은 것들이 가능해집니다.”

반면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는 데에는 다른 견해가 존재하기도 한다. 오히려 정해진 틀 안에서 가능성을찾는 것이 주요할 것이라는 입장을 모니터링과 실태조사를 진행했던 임지택(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전한다. “이러한 공공 공간의 점유 행태를 대개는 부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하지만 다문화나 이주민 노동자들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상인과 보행자의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런 지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 거리의 활력을 주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공공 공간의 점유 면적만큼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여기에는 사회적 합의를 위한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내국인이나 상인들은 좋아할 수 있겠지요. 이런 점에서 원곡동을 도시 건축적으로 읽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정책의 실현이나 문제를 찾기 위해서는 복잡한 이해 관계와 사회 변화 흐름을 놓치지 않고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는데, 현재로선 이런 연구 자료들이 거의 없어요, 공간적인 해법이나 대안을 위한 실제적인 공간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원곡동에는 지역주민센터가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하나는 원주민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원곡동주민센터, 또 하나는 이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주민지원센터이다. 다문화관련 정책이 추진되면서 중앙정부와 시정부가 이 지역에 지원 시설을 마련한 것이다. 같은 모습으로 나란히 있는 두 주민센터가 주민의 특성에 맞게 특화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건립되었지만, 덕분에 주민자치위원회 역시 한국인자치위원회와 이주민자치위원회가 별도로 구성되었다. 게다가 대형 교회와 같은 외부의 민간단체들도 지원 시설을 설치하면서 원곡동은 ‘외국인 지원 정책의 전시장’이 되어가고 있다. 정작 외국인 커뮤니티의 활력은 줄어드는 반면에 지원 시설이 증가하는 현상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도판 6. 도시구조분석 폴더

#1 BUILDING STRUCTURE 원곡동은 4,5층 위주의 저층 주거가 밀집해 있으며, 대부분이 단일 필지로 이루어져 있다.
#2 도시 프로그램(용도) 대로변과 중심 가로를 주변으로 상업 시설이 분포하고 있으며, 가로에서 한 켜 이상 들어간 곳은 주로 주거가 위치한다. 중심가로 기준으로 곳곳에 환전소, 은행 등 각종 편의 시설이 위치한다.
#3 주요 시설 안산역은 지하철 4호선의 종착역(오이도역과 함께)으로서, 서울권으로 이동을 도와주며, 다문화 특구와 반월공단의 영향을 받아 근로자 진료소, 외국인 업무를 전담하는 주민센터 등이 위치한다.
#4 오픈 스페이스 서측에 위치한 공영 주차장은 밀도 높은 원곡동의 주차 문제를 해결해 주며, 곳곳에 공원과 소규모 광장을 조성하여 사람들에게 커뮤니티 공간을 제공하게 하였다.

도판 7. 공간사용실태 폴더

게토를 형성하는 도시 구조와 쪽방촌의 변화 

원곡동의 상업 공간을 둘러싼 변화와 달리, 지역 내 주거 유형과 주거지로서 풍경이 변화하는 것은 점진적이지만 보다 가시적이다. 이러한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라, 지역 내 주거지들은 여러 가지 주택 유형이 공존한다. 하나는 원주민들과 초기 입주자들이 지은 단독주택인데 소수만 남아 있다. 다음으로 1980년대에 공단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공단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기존의 단독주택을 10여 가구를 수용할 수 있도록 개조한 주택들이다. 일반적으로 쪽방 구조라고 하는 유형으로, 복도를 외부로 두어 층마다 회랑을 두고 있는 주택들이다. 또한 처음부터 임대를 목적으로 지은 다가구 주택들이 있는데, 단독 필지 안에 20여 가구 정도를 수용한다. 이들의 1가구 면적은 대개 23-33m2 정도이다. 그리고 나머지 건물들은 1990년대 이후에 지어지기 시작한 것들로서 이 역시 대부분이 임대주택들이다. 또한 공단 지역의 노동자들 숙소가 되었던 쪽방 구조의 주택들이 점차 원룸 구조의 다세대 주택으로 바뀌면서, 서울이나 대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과 비슷해지고 있다.

이와 달리, ‘국경 없는 거리’를 지나 주택이 밀집한 지역으로 들어오면, 원곡동 전체를 에워싸는 6, 8차선의 순환도로로 나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반드시 목이라고 하는 곳을 거쳐야 외부로 나갈 수가 있다. 원곡동은 직교형 가로 체계와 양파와 같이 한 겹씩 중심을 감싸고 있는 블록 형태의 환형 구조로, 블록의 내부로는 열려 있고 바깥으로는 닫힌 구조때문이다. 오히려 원곡동의 도시 구조적 특성에서 주거 환경으로서 가능성을 찾아 볼 수도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끼리 공동체를 이루고 그곳을 편안하게 느낄 수 있으며, 한국인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되지 않아 주변과 적절한 단절을 만든다면 게토를 이루기에 좋은 구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들만의 게토를 형성하는 것은 정서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것이며, 주거 환경으로서도 나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사회적 환경에 맞는 주거지로서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임지택).”

한편 이 같은 구조는 원곡동 이외에도, 안산 지역에서 육각형의 직교 방사형 가로 패턴을 띠는 블록이 두 곳 존재한다. 안산이 계획되던 당시, 유럽 도시에서 절대 군주의 힘을 상징하는 방사형 도시나 전원도시의 영향을 받았을 것을 추측할 수도 있겠지만, 방사형 구조로서 결절점들은 갖지 못한다.

도판8. 주거유형 폴더

건축과 도시는 사회의 산물인가

다양한 국적의 시민들과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안산 원곡동의 문제점은 공간의 사용 실태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고 있다. 동시에 사회적 인식과 편견의 부조리와 모순이 내포돼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현상이 주는 의문은 과연 건축과 도시가 사회의 산물인가, 하는 점이다. 건축과 도시는 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기능을 수용하지만, 사회 환경을 구성하고 영향을 미치면서 사회 체제와 형태 또한 유지하고 수용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외국인 밀집 지역을 보는 시선은 이렇다 할 만큼 열려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그 와중에 안산 원곡동의 건축과 도시는 방향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안산 원곡동의 외국인 밀집 지역은 도시 하위 계층의 분리된 공간이자, 외국인들의 정체성의 근거이기도 하며 동시에 이색적인 풍물로 급속히 상품화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조성된 공간이 아니며, 사회적 관계를 내재하고 변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도시사회학자 장린(Jang Lin)이 적절히 지적하고 있듯이, 외국인 밀집 지역은 오늘날 독특한 풍물을 상품화하는 관광지로서, 지역 주민의 삶과 도시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활성화된 외국인 밀집 지역은 동시에 이 지역을 해체시켜 버릴 수도 있는 초국적 자본의 축적과 도시 재활성화의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인터뷰이_김용승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글로벌다문화연국원 다문화중심도시연구단 단장, 임지택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박천응 목사/ 안산이주민센터, 김정호 원곡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이현선 YMCA 안산 좋은 마을 만들기 지원센터 사무국장


WIDE 11/12월호 2011년 



2011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
도가도비상도(圖可圖非常圖)가 던지는 도시 건축의 메시지

“폐하, 폐하의 손짓 한 번에 따라 하나밖에 없는 마지막 도시의 성벽들이 흠 하나 없이 높이 세워지는 동안, 저는 그 새 도시에 자리를 넘겨주기 위해 사라졌을 다른 가능한 도시, 다시 세워지거나 기억될 가망이 없는 그 도시의 재를 긁어 모을 겁니다. 그 어떤 보석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 불행의 잔재들을 인식하실 수 있을 때에만 폐하께서는 마지막 다이아몬드가 가져야 하는 정확한 캐럿을 계산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폐하의 계산에는 처음부터 실수가 없을 겁니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 중에서, 수정과 같은 재료와 완벽한 설계로 이루어졌으나 늪 속의 시체처럼 썩어가는 제국의 운명을 늘상 걱정하는 쿠빌라이 칸에게 마르코 폴로가 건내는 말이다. 진정한 도시의 면모는 도시의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찾을 수 있으며, 보이지 않는 가능성이 도시를 훨씬 값어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올해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총감독 승효상)의 한 섹션은 10개의 폴리가 만든다. 광주폴리라 불리는 이들은 옛 읍성의 유허를 따라 세워지고, 폴리를 잇는 둘레길은 사라진 읍성의 영역을 드러낸다. 어떤 것은 원래 읍성의 문이 있던 자리에서 문의 기능을 한다. 혹은 읍성이 돌아가는 모퉁이에서 읍성의 경계점을 표시해준다. 어떤 것은 쉼터가 되어 현재의 사람들로 하여금 기능을 불러 넣도록 한다. 그리고 어떤 것은 도시의 자그마한 갤러리가 되기도 한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는 길이 무엇인지를 묻고,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에서 도가도비상도(圖可圖非常圖)가 디자인이 무엇인지를 되묻는다면, 쿠빌라이 칸과 마르코 폴로의 대화에서처럼 광주폴리는 도시가 무엇이고 건축이 무엇인가를 되묻고 있다(도가도비상도(都可都非常都)). 그래서 이러한 물음은 현대 도시를 만들어 온 수많은 이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온 것들에 대한 비판적 선언과도 같아 보인다. 관련 자료 제공_2011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사진 김종오)

사라진 읍성과 10개의 폴리

옛 광주읍성의 둘레길은 2.2km에 이르는데, 읍성의 모퉁이와 성문으로 추정되는 위치에 10개의 폴리(큐레이터 김영준, 라몬 프랫)가 세워졌다. 광주읍성은 고려 후기에 지어져 구한말까지 존치되어, 읍성 내에는 전통적인 마을 구조가 남아 있었다. 1908년부터 1916년경까지 누문을 마지막으로 읍성과 성문이 모두 헐리고, 그 자리에 도로가 건설되었다. 그러면서 성 밖으로 도시 공간이 확대, 결국 도시 영역이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라진 광주읍성의 영역은 현재 공사 중인 아시아문화전당(옛 전남도청 자리) 영역과도 교차하는데, 요시하루 츠카모토의 ‘잠만경과 정자(10번)’에서 프란시스코 산인의 ‘사랑방(9번)’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다. 들어서는 아시아문화전당 내에서는 이 같은 읍성 길의 흔적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리고 광주폴리의 공간적 특성은 파빌리온에 가깝다. 거기에 가로 시설물로서 공공 기능이 더해져 있고 그 자체로 장식적인 역할을 아우른다. 그러면서 전체를 하나의 대상으로 보아 건축가의 아이덴티티를 불어 넣은 라빌레뜨 공원의 폴리와는 또 다른 접근을 보인다. 비교적 규모가 작고 서로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충분히 떨어져 있는 상태이니, 형태가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다. 그래서 폴리마다 통일성을 갖기 보다는 그 자체가 주변과 어울리는 것이 중요해진다. 광주폴리를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들은 바로 공간과 장소, 그것을 이용하는 시민들과 시민들의 행위들로, 이 요소들이 어떠한 결합을 이루는지에 따라 조금씩 다른 성격을 갖는다.

공간과 장소,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의 행위들

첫번째로 읍성의 영역을 말해주는 모퉁이에 위치하면서 장소적 특성에 반응하는 폴리들이다. 그 중 하나는 옛 광주읍성의 기점이자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 ‘소통의 오두막(1번 장동 사거리, 후안 헤레로스)’으로, 낮에는 기존의 나무들과 어우러진 조형물로서, 밤에는 사람들의 다양한 활동을 비추어주는 가로등과 같은 조명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교통섬과도 같던 장동사거리 자투리 공간의 인지도를 높이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자유곡선형의 조형물은 세 개의 기둥과 케이블에 매달려 지지되고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슬래브가 일정한 바닥 패턴을 만들면서 공간을 점유한다. 반면 폴리 ‘열린 공간(8번 구 시청 사거리, 도미니크 페로)’은 이와 유사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자세를 취한다. 역시 읍성의 다른 모퉁이 지점에 위치하지만, 상업지구로 유동 인구가 많아 이 곳의 폴리는 개방된 박스 구조의 형태를 취한다. 한국 고건축물의 나무 기둥, 누각과 처마에서 형태를 차용하였다. 황금색 메탈 패브릭 처마가 접혔다 펼쳐졌다 하는 것이 마치 포장마차와도 비슷해서 상업지구의 사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생기를 대신한다.

그리고 나데르 테라니의 ‘광주 사람들(3번 대한생명 사거리, 나데르 테라니)’은 강철봉 구름처럼 공중에 떠 있는 수평 구조물로, 좁은 도로와 다양한 스케일의 건물군들 사이에서 가로수의 이미지로 흡수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 구조 원리 또한 나뭇가지에서 비롯된 텐서그리티(장력 조합) 구조로 최가철물점에서 제작하여 현장 시공한 것이다.

반면 알레한드로 자에라 폴로의 ‘유동성 조절(4번 금남로 공원)’은 기존 도시 조직과 좀더 강력한 연계를 이룬다. 금남로 공원은 5.18 민중항쟁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곳인데, 폴리 ‘유동성 조절’은 두 가지 구조물을 설치한다. ‘지렁이(Worm)’이라 불리는 구조물은 지하상가의 캐노피로 보행을 방해할 정도로 방치되었던 시설물들을 덮고 시선이 공원으로 향하도록 한다. 그리고 공원을 향한 계단식 구조물 ‘하하(Haha)’가 공원과 지하 상가를 이어준다. 폴리 ‘기억의 현재화(7번 황금동 콜박스 사거리, 조성룡)’는 '지워진 기억'의 관문으로 서있다. 이곳은 광주읍성의 서문 자리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광주 시민들에게는 콜박스 사거리로 불리는 젊은이들의 거리에, 폴리 ‘기억의 현재화’는 지나간 역사와 현재의 새로운 기억들을 형성한다. 원래 계획은 하늘로 치솟은 기둥 조형물이었다. 법적으로는 차량 통행이 금지된 장소이지만, 실제로 차량 유입이 빈번하여 통과 차량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기둥 조형물을 없애고 콘크리트 마운드가 낮게 자리하게 되었다. 마운드 위에는 옛 광주읍성과 현재의 광주 구도심의 가로가 표현되어, 방향 감각을 잃은 이들에게 나침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잠망경과 정자(10번 대성학원 앞, 요시하루 츠카모토)’는 새로 건립될 아시아문화전당과 옛 읍성의 터까지를 조망하는 25m 높이의 잠만경이 설치가 됐다. 읍성의 성벽이 헐리고 나서 점차 그 자리를 고층 건물들이 대신함에 따라 우리의 시야가 점점 더 좁아지는 상황을 말해준다. 한편으로는 앞으로 시간이 경과하면서 도로 변 파고라를 덮고 있던 당쟁이 넝쿨이 타워를 휘감아 올라 푸르게 변모하는 잠망 타워를 기대하게 된다. ‘99칸(5번 충장로 파출소, 피터 아이젠만)’은 도로에 면해 있는 상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곳에 구조물이 공간을 재구성하며, 공모전 당선작인 ‘열린 장벽(6번 광주세무서 사거리, 정세훈-김세진)’은 옛 읍성 벽의 일부였던 벽돌을 나타내는 오브제들을 들어올려 과거의 벽을 여는 제스츄어를 취한다.

점, 선, 쐐기, 손가락, 네트워크 (폴리의 패턴)

광주는 줄곧 읍성이 있던 구도심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성장해오다가, 광주의 남동쪽에 있는 무등산으로 인해 반대편 북서 방향으로 팽창해 왔다. 특히 1980년대 말부터 외곽으로 주거 지구와 상업 지구를 개발하고 많은 공공기관들이 상무지구나 첨단지구 등으로 이전하면서 빠르게 성장해 왔는데,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를 통해 들어서게 된 10개의 광주 폴리는 2014년에 완공될 아시아문화전당과 어떠한 상호 작용을 하게 될 지가 주목된다. 향후 매년 10개의 폴리가 새롭게 도심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이후 폐선로(푸른길)를 따라 선적인 구성을 취하며, 구도심에서 광주 전체의 남동쪽에 위치해 있는 무등산 영역 쪽으로 폴리가 확장, 구성될 계획이다. 그 다음 단계로 전남방직과 광주역, 그리고 비엔날레 홀을 거점으로 하는 구도심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지고 양동시장, 상무지구, 공항 등 도시 거점들을 잇는 폴리가 구도심과의 연계성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게 된다. 


*************************************************

인터뷰 | 승효상 2011 광주 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 종합건축사사무소 이로재 대표

디자인의 본질과 배후

- 올해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는 전시장에서 도시 공간으로 확장되었고, 폴리와 같은 건축 프로젝트를 포함할 만큼 주제가 특별해 보인다.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의 주제인 ‘도가도비상도(圖可圖非常圖)’는 2500년 전에 중국 노자의 도덕경 그 첫 구절에서 따왔다. 원래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는 ‘길이 길이라고 불리는 길은 길이 아니다’, 라는 뜻인데, 길을 그림이라는 글자로 바꾸어 ‘디자인이라고 하는 것이 다 디자인이 아니다’, 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요즘의 디자인 생태계가 전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달라져 있고, 달라진 환경에서 디자인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19세기 산업혁명의 산물로서 대량 생산을 전세계에 유포하고자 만든 전략이 디자인이었지만, 지금은 디지털 환경의 발달로 인해, 아무나 디자인 할 수 있게 되었고 특별한 장소가 필요 없게 되었다. 이 시대에 디자인에 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고, 다 함께 생각해보자는 의미에서 주제로 정해졌다.

그리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두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였다. 이름과 장소인데, 디자인과 이름의 관계(유명, 무명), 디자인과 장소(광주폴리, 커뮤니티)의 관계를 묻는다. 장소성이 있는 디자인을 설명하기에는 건축이 가장 좋은 예다. 그리고 제한된 기간 안에 완성할 수 있는 간단한 시설물인 ‘폴리’라는 프로젝트 타입을 생각해낸 것이다. 폴리를 설치하게 된 옛 광주읍성을 생각한 것도 다시금 그 장소를 발견하기 위한 것이다. 여러 건축가들이 장소 특성에 맞는 디자인을 하였다.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 이 시대의 디자인이 무엇인지, 어떠해야 하는지를 묻는 또 다른 측면은 디자인을 만드는 배후를 묻는 것이라 했는데, 도시와 건축의 환경에 대한 물음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 같다.

도가도비상도는 디자인은 물론, 본질적인 것에 대해 되묻는 것이니 건축이나 도시, 삶이나 어디든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 시대의 디자인이 무엇인지, 어떠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고, 달라진 디자인 생태계에 디자인과 디자인을 만드는 배후를 묻는 것이다. 도시와 건축의 환경에 대한 물음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건축은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가, 라고 했을 때, 도시의 모습에 대한 책임의 대부분은 건축가에게 있다. 도시를 만드는 그 일선에 있었던 사람들이 건축가였기 때문이다. 건축의 직능이 유기되는 것에 윤리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자칫 건축을 윤리적이라고 한다거나, 나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가 했을 때 그런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와 건축계가 너무 파행으로 일관해 가고 있다. 국가와 제도가 이를 보장하면서 파행을 이루고 있으니 헤어날 길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젊은 건축가들이 너무 쉽게 윤리 의식을 져버리는 것이다. 먹고 산다는 핑계로 너무 쉽게 타협해 버린다. 한 번 포기하기 시작하면 앞으로 계속 포기하게 되고, 대단한 참회가 있기 전에는 되돌아오기도 어렵다. 디자인 문제가 형태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건축에서는 시스템까지도 포괄한다.  

디자인의 자극과 환기 

- 광주폴리가 주는 장소적 메시지는 어떠한 것인가.

광주읍성에 대해서는 광주 시민들도 잘 모르고 있었다. 일차적으로는 폴리를 통해 옛 광주읍성 둘레길이 현재적으로 복원이 되고, 그 존재 자체를 인식하게 되었다. 읍성 자체를 기억하는 것으로만 굉장히 중요하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읍성의 안과 밖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 것이 판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원도심과 새로운 도심이 구분되고, 어떻게 도시 재생을 해야 하는가가 드러난다. 그것이 도시 공공 영역에 관한 것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존재 자체를 인식하게 되고, 도시의 역사적 사실을 환기시켜서, 새로운 도시에 조그만 활력을 불러 일으키는 기능을 주변의 맥락에 맞게 부여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다.

-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삶의 질적인 변화를 기대하게 되는데, 디자인이 기여할 수 있는가

폴리는 작은 시설이지만, 자극을 통해 주변을 변화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예컨대 후안 헤레로스가 설계 한 장동 교차로의  ‘소통의 오두막’은 아무도 가지 않아, 교통섬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 바닥을 새로 깔고, 그 위로 설치된 구름 같은 작은 조형물은 소리와 빛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뒷편의 부동산 소개소에서는 업종을 바꾸어봐야겠다고도 하는데 그곳의 공간 영역에 맞는 것들을 고민하게 된다. 그것이 자극을 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도시와 개개인의 삶이 좀더 윤택해지지 않겠는가. 바로 스스로 삶을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현재의 삶에 대한 자극이 윤택함을 불러오고, 그 이후는 주민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개인의 삶 하나하나가 중요하고, 삶의 결정권을 스스로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시대에 전체 건축가, 도시계획가, 관에서 해야 하는 일은 그 사람들이 삶을 결정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몇 가지 장치를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공공 인프라를 심어 주변에 자극을 주어서, 인근 주민이 영향을 받아 스스로 바꾸는 것이다. 과거처럼 전체를 다 도려내고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원주민의 정착율도 낮을 뿐더러, 새로운 사회 문제를 계속 유발시킨다. 좀더 나아가자면 이러한 변화를 유도시키는 것이 도시의 재개발 방식이고, 공공시설물들이 가져야 하는 임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물론 일반 건축물의 목적 역시도 공공성 확보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마스터플랜이 아닌 마이너플랜

- 하지만 현재, 사회에서 공공 미술, 공공 건축이나 시설이 결과적으로 많은 폐해까지 줄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사실 공공 디자인은 성립 자체가 되지 않는 말이다. 공공이 디자인한다는 것인지, 공공을 디자인한다는 것인지, 뜻이 분명치 않다. 말이 분명치 않으니 행위가 확실치 않다. 영어식 표현으로 쓰는 퍼블릭 디자인은, 위키피디어에서는 ‘Created by yourself’라고 설명한다. 퍼블릭이 디자인이 하는 것이 퍼블릭 디자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은 공공 시설의 디자인이었지, 공공 디자인은 아닌 것이다. 예쁜 가로등과 벤치로 도시가 디자인 되겠는가. 공공시설의 디자인으로는 도시를 디자인할 수가 없고 공공 디자인이라는 말은 오히려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도시의 본질, 도시 디자인의 본질은 공공 영역을 어떻게 조직하느냐에 있다. 도시를 디자인 하고 싶다면 공공 영역 디자인이 바른, 본질적인 말이다. 공공 영역 디자인을 해야 확실한 목표가 선다. 공공 영역이란 것이 익명성을 전제로 하는 도시민들이 모여, 서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나타나는 것이고, 도로나 광장 그리고 도시의 빈틈들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할 것인가를 합의해야 한다. 규칙이나 법규가 필요하고 디자인이 그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지금의 서울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그렇다면 광주에서의 실험을 일반화 할 수 있는 가치들이 있을까 

광주폴리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방식의 문제’로 확장할 수 있다. 옛날엔 전체가 중요했지만 지금은 한 개인이 중요하다. 개인의 가치가 전체의 가치와 맞먹는 게 지금의 시대다. 마이너가 메이저와 같은 가치를 맞먹는 걸 인정해야 한다. 도시를 대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도시계획을 할 때 뭉뚱그려서 평균치 인간이 아닌, 1부터 100분위까지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려우니 전제를 두고 2가 되는 것 하나씩만 만들어 놓으면, 그것이 영향을 주어 3이 되고 4가 된다. 다른 시설물이 세워질 것이다. 이런 식이 도시계획이 되고 재개발이 되어야 한다. 전 시대의 마스터 플랜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마이너 플랜이 필요하다. 도시마다의 역사나 지리, 여러 가지 고유한 특성을 하나하나 보살피고 거기에 맞는 건축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뭉뚱그려서 말할 시대는 이미 지났다. 광주폴리를 확대하면 그런 의미일 것이다.


wide 0910 vol.23

 

1 장동 사거리, 소통의 오두막, 후안 헤레로스
2 제봉로 김제규 경찰학원 앞, 서원문 제등, 플로리안 베이겔
3 대한생명 사거리, 광주 사람들, 나데르 테라니
4 금남공원 앞 인도, 유동성 조절, 알레한드로 자에라 폴로
5 충장로 파출소 앞, 99칸, 피터 아이젠만
6 황금로 입구, 열린 장벽, 정세훈+김세진
7 황금로 콜박스 사거리, 기억의 현재화, 조성룡
8 옛 광주시청 사거리, 열린 공간, 도미니크 페로
9 광산길 보도, 사랑방, 프란시스코 산인
10 대성학원 앞 파고라, 잠만경과 정자, 요시하루 츠카모토

11 동명동 농장 다리, 승효상
12 서석교회 앞 인도, 비토 아콘치
13 조선대학교 앞 사거리, 아이웨이웨이
14 계림동 광장, 미정
15 상수동 파고라, 미정
16 남광 철도, 미정
17 대남로, 미정
18 주월동 빅마트 플라자, 미정
19 광복길 입구, 미정
 

 



평양에서 서울을 보다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를 통한 평양의 도시 건축 읽기


작년 겨울 어느 갤러리에서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의 사진 몇 장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한국’을 소재로 한 그의 다큐멘터리 사진들(Korea 2007-2010) 중 ‘평양 북서동’은 흡사 잠실 지역이나 새 도시의 주거 단지를 떠오르게 하는 것이었다. 가로를 따라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고층 건물들은 사진 속에서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감추고자 했을까. 핵 무기와 기아의 나라 북한, 그곳의 수도 평양의 모습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19세기 파리를 근대도시로 만들어 낸 오스만의 도시계획은 주거 환경을 개선하였지만, 일부 귀족과 지배 계층의 주거에 제한을 둠으로써 공간적 차별을 낳았다. 당시 엥겔스가 지적한 도시재개발의 문제점이 150여 년이 흐른 지금 한국에서도 같이 발견된다면, 그와 같은 문제 인식과 반성에서 출발한 사회주의 도시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 전지구적 이슈 중 하나인 탄소발자국이나 마을 단위의 공동체, 도시 농업과 같은 개념들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 권의 책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임동우 저, 효형출판)의 시의적절한 출간을 반기게 된다.

사진 속의 북서동 주거들도 1970년대 이후 평양의 인구가 늘면서부터 건설된 살림집들로, 도로변을 따라 고층 주거들이 배치되어 주요 도로의 가로 경관을 바꿔 놓았고, 또 노후화되어 가고 있다. 책에서는 이러한 평양의 변화를 인티그럴 어바니즘의 입장에서 접근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사회주의 도시의 뼈대 위에 자본주의의 옷이 입혀질 때 가장 큰 변화가 예측되는 곳은, 다름 아닌 사회주의 도시계획의 철학이 가장 잘 구현된 공간이다. 그 공간의 물리적 변화는 가능성과 동시에 한국의 도시가 갖고 있는 문제들에 다시 직면하게 될지 모른다는 점에서이다. 결국 우리가 평양의 도시 건축에서 보아야 할 것은 민족적 동질성보다 삶과 도시 건축에 대한 보편적인 입장이 아닐까 한다. 글/강권정예(본지 객원기자)   관련 자료 제공/프라우드 PRAUD

----------------------------------------------------------------------------------------------------------

평양은 역사도시다. 서울이 산의 도시라면, 평양은 이름 그대로 평평(平)하고 너른 대지(壤)다. 서울이 백악, 인왕, 목멱(남산), 낙산, 네 개 산의 능선을 따라 한양도성을 쌓았다면, 평양은 모란봉(95m), 대성산(270m) 정도의 나즈막한 산과 강을 경계로 해서 평양성을 쌓았다. 그리고 한강 폭의 절반 정도인 대동강과 지류인 보통강이 (청계천이나 중랑천 보다) 도시의 훨씬 많은 부분을 지나가는, 강이 발달해 있는 도시가 평양이다.

평양은 고구려 장수왕(427년) 때 평양으로 천도를 하면서 그때 자리를 잡은 것이 대성산성과 안압궁이며,방어용 토성도 쌓고 안압궁 아래로 백성들이 사는 도시를 바둑판처럼 만든다. 위로는 왕궁, 아래는 백성들이 사는, 이원적인 도시 형태로 자리를 잡는다. 그러다 평온왕(586년) 때 지금의 평양인 평양성을 만드는데, 강과 모란봉 산 사이에 호리병 모양으로 쌓은 성은 당나라 장안성에 빗대어 불리기도 했다. 평양성은 북성 내성 중성 외성, 내성에 왕궁이 있고, 중성에 관공서가 있고, 외성은 백성들의 거주지, 북성은 방어기지로 네 겹의 구조이고, 외성 쪽은 바둑판 모양으로 직각 방향으로 도시를 만들었다. 평양 도성의 구조는 고구려 때부터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까지 내려온다.

이 구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 일제시대인데, 바둑판 모양의 도시 구조와 어긋나게 철도가 지나고 평양역이 들어선다. 그리고 역 앞으로 도로가 나고, 군부대나 시설을 배치하면서, 원래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오던 도시 체계가 깨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국전쟁의 폭격으로 평양은 폐허가 된다. 기록에 따르면 미군이 평양에 투하한 폭탄은 태평양 전쟁 당시 5년간 쏟아 부은 폭탄 전체의 양과 맞먹었고, 폭격으로 평양 시가지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폭격을 피한 건축물은 미군이 지표로 삼고자 남겨놓은 옛 평양성의 남문 대동문이 유일한 것이었다.

1 도시 다핵화를 위한 광장과 녹지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된 역사 도시의 면면은 한 건축가의 마스터플랜에 의해 새롭게 구축된다. 평양은 전쟁 이전인 1948년 북한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이미 도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는데, 보통강 개수 공사를 마치고 그를 기념하는 개수 공사 기념탑을 세우기도 한다. 그리고 평양은 이상적 사회주의 도시 건설을 위한 도화지 같은 곳이 된다.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도시 계획의 대표적인 특징은 선형 도시로, 중심 없이 기다란 형태를 띤다. 자본주의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동심원 형태나, 철도나 지하철이 중심에서 외곽으로 뻗어나가는 핑거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평양의 경우도 이 같은 중심과 주변의 구분을 짓지 않도록 도시 계획이 이루어졌다. 평양을 몇 개의 작은 단위로 나누고(소단위 구역 계획), 지역 마다 상징 광장이 하나씩 조성되어 그 지역의 핵과 노드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도로를 비롯한 도시 기반 시설이 지역과 지역을 연결한다. 그 사이사이 완충 지역 역할을 하는 것이 녹지 인프라(인공적으로 조성된 공원, 강, 산, 그리고 농업 용지 등을 포함)이다. 평양에서 유원지와 공원 시설은 녹지 인프라의 대표적인 요소로 대부분 평양의 자연 지형을 따라 계획되었고, 일부는 이 자연 지형을 그대로 반영했다. 그리고 위성 사진을 보면 농업 용지가 평양의 외곽에서 안쪽으로 침투하는 모양새로 방사형을 띤다. 서울이 그린벨트라는 이름으로 명확한 선을 그어 도시 팽창을 억제하고 도시민들에게 공원을 만들어 녹지를 제공하는 것과는 차이가 큰 지점이다. 김일성광장을 중심으로 반경 10km 안의 시가지를 볼 때, 그 안에 주요 농업 지역이 여럿 나타나는데, 시가지와 농업 지역이 특별한 공간적 구분이 없다. 여기서 녹지 인프라는 도시와 농촌의 공간적 구분이 아니라, 그 둘을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역할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대동강과 보통강의 양안, 그리고 주요 도로 주변이 대표적으로 1980년대부터 조성되었으며, 시민 1인당 녹지 면적은 약 40㎡에 이른다. (서울은 16㎡, OECD 국가 평균 20㎡) 평양의 별칭이 ‘공원 속의 도시’라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녹지와 광장을 이용해 평양을 다핵화하는 방법은 건축가 김정희에 의한 1953년 평양 마스터플랜에 따른 것이다. 이 마스터플랜의 중요한 의미는 도시와 농촌의 격차 해소, 이로써 궁극적으로 계층의 차이를 소멸하는 것은 사회주의 이념과도 상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지역적 균등을 위해 고안된 상징적 광장은 그 지역 내에서도 공간적 위계 질서를 갖지만, 이 모든 광장의 중심에는 김일성광장이 있다. 그곳이 사회주의 이념과 체제를 선전하고, 상징하는 가장 핵심 공간으로 계획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징성은 김일성광장만으로써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2 도시 상징 공간과 축을 형성하는 광장, 기념비적 건축물

김일성광장과 상응하는 상징적 공간이 바로 대동강 맞은 편에 배치된다. 대동강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배치된 상징 공간은 평양의 평양의 도시 핵심 축을 형성하며 도시공간을 만들어 왔다. ‘주체탑—김일성광장—인민대학습당’으로 이어지는 축이 평양의 제 1 핵심 축으로, 평양의 동쪽과 평양 중심부를 연결한다. 그리고 또하나가 ‘조선혁명박물관—김일성동상—공산당창건기념탑(망치, 붓, 갈고리 모양의 조형물)’으로 이어지는 것이 제2축이다. 여기서 김일성광장은, 광장을 형성하는 조선역사박물관과 조선미술박물관이 당시 동유럽 건축 양식의 영향을 받아 1950년대 완공이 된다. 그리고 인민대학습당(국립도서관)이 제1 중심축에 놓이게 된다. 그럼으로써 김일성광장이 있는 지역은 사회주의 도시 평양을 상징하는 곳으로서, 이념 선전과 민중 선동의 특별한 위상을 갖는다. 아울러 대동강을 기준으로, 김일성광장이 있는 서쪽 영역과 주체탑이 있는 동쪽 영역을 묶고 있다. 새로운 개발 영역인 강동 지역과 기존 도시가 존재하는 강서 지역이 강한 유대 관계를 형성, 하나의 도시를 구성함으로써 김일성광장 주변 지역과 함께 마스터 플랜에서 이루고자 한 평양의 중심 영역으로서 면모를 갖추게 된다. 기념비적 건물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은 거의가 1970년대에 건축된 것이다. 인민문화궁전, 조선혁명박물관,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평양체육관, 만수대예술극장, 4ㆍ25문화회관 등은 1970년대 준공이 되는데, 모두 연면적 5만㎡가 넘는 대형 건축물들이다. 특히 만수대광장의 만수대 대기념비(1972년 김일성 회갑 기념 준공)는 김일성광장과 함께 주요 광장 역할을 한다. 조선혁명박물관과 함께 만수대 지역을 평양의 또 다른 주요 상징 공간으로 만들게 된다. 특히 비교적 경제나 체제가 안정돼 있던 1970년대에 지어진 건축들은 한옥의 모티브를 살린 건물이 많다. 인민대학습당, 평양대극장, 인민문화궁전이 대표적으로, 콘크리트 구조이기는 하지만 한옥 지붕을 취한다. 그 시기 사회주의 도시 계획과는 또 다른 조선 사회주의식, 즉 주체사상에 입각한 평양의 도시 건축이 다시 조성되기 때문이다.

자급 자족 공동체를 위한 소단위 구역 계획

마르크스와 엥겔스 역시, 도시에서 녹지 면적을 확보하는 것은 도시와 농촌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평양에서도 녹지 공간의 일부는 농업 용지로 설정되었는데, 평양에서 도시 조직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기본 방식이기도 하다. 즉 주거와 생산 시설을 결합하는 것이다. 250×250m 규모의 격자형 소구역을 기본으로 지역을 구성하고, 지역이 모여 평양을 구성한다. 여기서 지역마다 상징 광장이 하나씩 조성되고, 도로를 비롯한 도시 기반 시설이 지역 간 연결을 이루고 녹지 인프라가 사이사이에 결합이 된다. 주구 단위는 주거, 생산, 소비, 교육, 부대 시설을 함께 둔다. 규모 역시 걷기가 가능한 거리를 기준으로 규모가 설정되었다. 이러한 대중의 생활 체계를 구성하는 소단위 구역 계획은 복합 주거 단지를 지향하면서, 소구역이 하나의 자생적 주구 단위가 된다. 이러한 도시 공간 체계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배경은 주거 전용 지역과 공업 밀집 지역에 딸린 주거지는 환경적 차이 때문에 지역간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으며, 두 지역 주민 간의 계층적 분리를 야기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모든 주거 지역이 일정한 비율의 생산 시설과 상업 시설, 공공 시설을 포함하고 있다면, 환경적 이유로 생기는 지역 간 격차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당연히 보행 위주의 환경과 주민들은 종일 넓지 않은 반경 안에서 생활하므로 구역 내 차량 운행을 활성화할 이유가 없고, 통근 거리와 시간이 줄어드는 점에서 최근에는 친환경적 계획으로 다시 주목 받고 있기도 하다. 특히 지역에서 생산된 먹거리와 물품을 소비한다는 점에서 탄소 발자국이나 탄소 라벨링, 도시 농업과 같은 개념들과 맥을 같이 한다. 이러한 소구역 계획이 가장 잘 실현된 곳은 바로 김일성광장 맞은 편의 대동강 동쪽 지역이다. 이 소구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역의 가장자리에는 주거 시설, 내부에는 기타 공용 시설과 작업장이 배치되었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보는 주거 복합 건물과는 사뭇 다른 배치다. 소구역 내의 작업장과 공용 시설은 구역 내 주민을 대상으로 하기에 외부에서의 접근성은 크게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며, 구역의 외곽으로 고층의 선형 주거 시설을 배치하여 가로 경관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선전 효과도 영향을 미쳤다.

4 가로의 경관을 만드는 주거 타이폴로지

평양은 거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도시이다. 소구역의 외곽으로 선형 주거를 배치하는 특성 때문에 평양의 도시화는 주요 거리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강남, 잠실, 목동 등 특정 지구를 중심으로 개발을 진행한 서울과 달리, 평양은 주요 거리를 확장하고 개선하면서 그 주변 지역을 새로운 주거지역으로 개발하는 노력과 도시화를 병행했다. 평양의 대표적인 거리로 천리마거리는 초기에 만들어진 거리이다. 이와는 달리 사뭇 다른 모습으로, 현재 평양의 모습을 형성하는 가장 특징적인 곳이 1980년대부터 조성된다. 만경대구역 내 광복거리와 락랑구역 내 통일거리로, 1953년 마스터플랜에서는 계획돼 있지 않은 지역이다. 1980년대 서울에서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 열리고, 평양에서는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열린다. 평양은 세계청년학생축전을 하면서 거리 조성과 경기장 시설들을 대거 건축하는데, 청춘거리, 광복거리가 대표적이다(만경대는 김일성 생가가 있고, 광복거리는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의 탄생지가 있는 칠골에 조성된다). 이 곳에 소위 비반복적 형태의 주거들이 대거 들어서면서 신시가지로 개발된다. 비슷한 시기에 통일거리가 함께 만들어진다. 반면 김일성광장이 있는 구역에서 강 건너 대동강구역 역시 초고층 살림집으로 개발이 된다. 이러한 1980년대 후반부터 형성된 지역의 도시 계획과 다양한 형태로 들어선 고층 건물들은 주체사상과 김정일의 건축 예술론의 핵심인 비획일성과 비반복성이 표현된 것들이다.

5 인티그럴 어바니즘과 모더니즘 도시 계획의 교훈

현재 평양의 가로 경관은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도시들의 획일적인 경관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길을 중심으로 도시 계획이 진행된 평양에서는 길과 길이 만나는 교차로 부분에 특히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건물들이 들어서는데, 이 점은 길을 지나갈 때 보이는 경관과 눈에 보이는 도시의 미학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사회주의 도시 계획이 체제 우월성을 눈에 보이는 경관이나 형태로 보여 주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최근에 많은 비판 점이 되기도 한다. 결국 파리나 런던, 프라하와 같은 도시가 될 것인가, 상하이나 푸동과 같은 도시를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입장의 차이를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평양은 1990년대를 지나면서 도시 노후화가 진행되고 도시 관리의 측면에서 그 방안이 요구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에서는 몇 가지 제안을 두는데, 그 전제로 자본 시장의 개방을 필연적인 것으로 두고 있다. 그럼으로써 평양의 도시 공간이 갖는 잠재성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가치가 대치되는 곳에서 더욱 드러난다. 예를 들면 상징 공간인 인민대학습당에서의 프로그램 치환, 김일성광장의 공간 재구성, 류경호텔과 주변 지역의 도시 재개발, 소단위 구역으로 계획된 지역에서 생산시설에서의 용도 변화이다. 그 방법에서 인티그럴 어바니즘(현재의 도시 조직을 기반으로 한 물리적 환경의 점진적인 변화)의 자세를 주장한다. 이런 변화에 대해서 도시의 지속성을 갖는 것은 도시민들의 활력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하는데, 정석(경원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다음과 같이 입장을 더 한다. “도시에서 제일 중요한 것, 도시가 생명력이 넘치고 살아 있으려면 길이 살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걷는 보도가 중요하다. 어느 도시나 길에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은 살아 있는 도시고, 길이 썰렁한 도시는 죽은 도시다. 지금껏 모더니즘 도시는 길을 죽이고, 그 대신에 오픈 스페이스를 살린다는 명분 하에 건물 안에 많은 것을 복합시켜 왔다. 특히 재개발 지역의 길을 걸어 보면, 건물은 나로부터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사이에는 주차장이 있기도 하고 화단이 있기도 하다. 건물과 나와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길에서 빨리 갈 생각밖에 갖지 못한다. 종로나 인사동, 남대문 지역이 거리에 북적이는 사람들로 활력이 넘치는 것은 모두 길에 면해서 건물이 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의 1층에서 가게와 상점들이 즐비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재미있게 한다. 결국 사람들에 의한 도시의 활력을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으로 인티그럴 어바니즘에서 주장하는 도시 설계는 1950년대 등장한 새로운 프로페션이다. 우리는 건축, 조경, 환경, 토목 분야와 달리, 도시 설계(어반 디자인)라는 새로운 프로페션의 등장에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것은 기존의 프로페션들이 시대의 사회적인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라는 것과 새로운 프로페션에 대한 사회적 기대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도시에서 프로페션으로서 건축가의 역할은 ‘공적인 것’으로 중요해지는 이유다. ⓦ

01 평양 중심부와 대동강
01 평양시가지 위성사진
02 평양의 제일 핵심 축 김일성광장 주체탑
03 평양의 제일 핵심 축 인민대학습당
04 1950년대 평양의 마스터플랜 스케치
05 평양의 주요 녹지 축
06 평양의 녹지 공간
07 평양의 주거 분포
08 평양의 주요 상징물
09 주체탑에서 촬영한 대동강 동쪽 소단위구역계획 지역
10 중층형 주거 타이폴로지
11 고층형 주거 타이폴로지
12 평양의 상징적 건축물과 기념비
13 평양 주요거리의 형성 연대
14 광복거리
15 통일거리
16 청년거리
17 새살림거리
18 마이크로 디스트릭트
- 마이크로 디스트릭트 개발 단계도
- 새로운 개념의 마이크로 디스트릭트

-----------------------------------------------------------------------------------------------------------

인터뷰 | 임동우
인티그럴 어바니즘과 건축의 방법

평양/북한의 도시 건축 연구 현황

참고 문헌에 해외 자료들이 많이 보인다. 상대적으로 국내에서 연구나 관심이 덜하다는 걸 알게 되는데, 실제로 현재까지 평양이나 북한의 도시에 대한 국내외 연구는 어느 정도인지, 앞으로 방향은 어떠한가. 임동우 연구의 출발이 사회주의 도시였던 동유럽의 도시들에서 시작되었다. 그 도시들의 지난 20여 년간 변화를 보면서 자연스레 평양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동유럽 혹은 러시아, 중국에 대한 해외 자료가 많았다. 이미 개방화가 진행되고 도시의 물리적인 환경까지 바뀌고 있는 사례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선행 연구가 있었다. 반면에 북한에 대한 자료가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 많이 부족한 것은 북한이 제한적인 정보만 공개하는 것이 이유일 수도 있겠고, 국내는 그 동안 관심이 적어서일 수도 있다. 국내에서는 그 동안 몇몇 학자들이 꾸준히 진행해 온 연구 성과가 있다. 이왕기 교수님은 북한 건축 전반에 걸쳐 역사와 양식 등을, 김원 교수님은 북한의 도시 발달과 계획적인 측면을 많이 연구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김현수 교수님은 평양과 서울의 도시 공간을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하셨다. 그럼에도 북한의 도시/건축 관련 인프라는 전반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특히 사회, 정치 분야와 비교했을 때 그 관심과 연구는 매우 제한적이다. 한 가지 이유를 더 들자면 국내 출판 시장의 분위기에서도 찾을 수 있을 거 같다. 해외에서는 건축가 자신의 견해나 시각을 피력한 출판물이 많은 반면, 국내에서는 읽기 어려운 전문서와 비전문적인 수필집(또는 기행문)으로 양분돼 있는 듯하다. 논문을 제외하면 국내 도시에 관해서도 자료로 인용할 만한 출판물이 많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이번에 책을 준비하면서, 또 출판 이후에 비슷한 주제로 접근하려는 건축 관련 종사자들을 주변에서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저와 비슷한 또래였는데, 우리 세대가 갖고 있는 관심과 시각은 이전 세대와는 다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북한 관련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하는 출판물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우리 세대의 몫이 아닌가, 하는 것이고, 또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본다.

한국 도시 건축에 대한 비판적 견해

현재 한국의 도시 건축 상황을 볼 때, 평양에서 찾을 수 있는 대안이나 교훈 같은 것들이 있을까. 임동우 사회주의 도시 계획 방법론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장점들이 많다. 책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사회주의는 애초에 자본의 성장으로 인한 도시화의 문제점들을 직시하면서 그 이념의 바탕이 성립하였고, 사회주의 도시 계획은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다. 이러한 노력은 이후 자본주의 도시들에 반영되기도 하였다. 서울같이 급속히 성장한 도시들에서는 도시화의 문제 해결보다는 도시화에 더 집중한 것이 사실이다. 성장의 속도가 한결 늦춰진 현재 서울을 비롯한 국내 도시들에서 사회주의 도시 계획에 나타나는 방법론들을 한 번쯤 되짚어 볼 만하다. 실제로 어떤 이는 사회주의 도시 계획론이 요즘 유행하는 지속 가능한 계획(Sustainable Planning)의 근간이 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도시와 도시, 도시 내 구역과 구역 사이의 균형 있는 발전을 지향하는 사회주의 도시 계획은 작위적인 재개발을 반대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지역간의 불균형을 초래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점은 현재 국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수많은 재개발 논리에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하지만 도시라는 것이 사회의 요구와 가치를 반영하는 것인 만큼,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균형과 분배라면 도시는 이를 반영할 수 밖에 없고 도시 조직들도 변하지 않을까 한다. 한국 사회에서 재개발의 논리는 아직 균형보다는 불균형적인 사회구조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 따라서 사회주의 도시에서 주는 교훈은 많지만, 이를 통해 한국 사회가 먼저 변화해야 한국의 도시들도 따라서 변화하지 않을까 한다.

인티그럴 어바니즘과 건축의 방법

인티그럴 어바니즘의 견지에서도 북한 사회나 문화, 여러 가지 현실에 대한 복합적인 이해가 필요할 것 같은데, (접근 자체가 제한이 많지만) 필요한 노력이나 견지해야 할 태도, 자세가 있을까. 임동우 건축가의 입장에서 프로젝트가 있는 국가나 도시의 문화, 사회, 역사 등에 대한 이해는 매우 기본적인 것이다. 하지만 건축가는 제너럴리스트라고 생각한다. 건축가가 프로젝트를 위하여 알아야 하는 것들의 깊이는 제한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건축가에게 북한에 대한 정보는 이미 충분한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실을 깊게 알고 있는가 보다 어떠한 시각과 입장을 갖고 있는가, 이다. 인티그럴 어바니즘은 기존의 도시 조직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사회의 변화에 대응해 나아가는 시각을 대변한다. 북한 사회와 문화에 대한 지식이 많은 건축가라 해도 기존 도시 조직에 대한 입장이 명확하지 않으면, 이를 무시하게 되는 것은 한 순간일 것이다. 그것은 평양이 다른 도시와 달리 특별한 보존 가치가 있어서라기보다, 모든 도시의 조직은 그 존재만으로 존중 받아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이를 존중하면서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으로서 인티그럴 어바니즘이 필요하다. 하지만 도시의 보존이라는 측면과는 분명히 구분이 된다. 평양이 개방(혹은 통일) 이후 하나의 도시로서 살아남기 위한 방안은 그 변화를 도시 조직 내에 수용하는 것이지, 도시 자체를 박제시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시각은 한국의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몇 개의 ‛신도시’가 건설되고 있고, 또 계획되고 있는지 다 알기도 힘들다. 도시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기존의 중소 도시들이 성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도시를 ‛건설’하면 된다고 보는 등의 시각은 결국 결과에서 큰 차이를 가져 온다.

평양의 특성에 적용할 수 있는 건축가로서 건축(설계) 방법론이 있는가. 임동우 인티그럴 어바니즘의 시각에서도 실천 방법론에 있어서 다양한 차이가 있겠지만, 저의 경우는 ‛키 빌딩(key building)’과 ‛타이폴로지(typology)’에 의거한 점진적 변화에 주목한다. ‛키 빌딩’은 주변의 도시 조직뿐만 아니라 대중 문화와 도시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아이코닉 프로젝트(iconic project)’와는 구분된다. 모든 ‘키 빌딩’은 ‘아이코닉 프로젝트’일 수 있지만 모든 ‘아이코닉 프로젝트’가 ‘키 빌딩’이 될 수는 없다. 쉬운 예로 구겐하임 빌바오가 ‘키 빌딩’이 될 수 있는 것은 형태나 방문하는 외부 관광객 때문이 아니다. 주변의 인프라 스트럭처와 공간을 하나로 아우름으로써 도시 설계에서 계획한 수변 공간과 기존의 도시 조직을 엮어 주는 역할과 동시에, 이로 인해 시민들의 새로운 도시 활동이 발생하도록 유도했기 때문이다. 현재 평양에는 수많은 ‘아이코닉 프로젝트’들이 있다. 규모나 양식 면에서 의미가 있고 보존 가치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고, 평양이 개방이 되고 개발이 이루어질 때 훌륭한 도시 인프라로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키 빌딩’으로 변화하여야 도시의 점진적인 변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김일성광장과 인민대학습당은 유일무이한 도시 공간과 ‘아이코닉 프로젝트’이다. 이들이 ‘키 프로젝트’로서 도시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주변 도시 조직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뿐 아니라, (상징성 면에서는 좋았지만) 이들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는 것도 과제일 것이다. 평양에 산재하는 ‘아이코닉 프로젝트’들을 경우에 따라 ‘키 빌딩’으로 변화시키는 노력이 일차적인 단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타이폴로지이다. 타이폴로지는 건축 미학적인 관점에서 주목 받기 힘들지만 실제로 도시 공간을 구성하고 변화시키는 데 많은 역할을 한다. 특히 반복적인 구성을 하는 주거 타이폴로지가 그렇다. 한국의 가로 경관이 네덜란드와 다른, 주된 이유는 도로의 폭이나 가로수 때문이 아니라 가로형 주거 타이폴로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평양에서는 초고층 주거 단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블록의 외곽부에 중층의 선형 주거 타이폴로지를 배치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간간히 배치되는 고층 주거가 평양의 가로 경관 및 공간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평양이 개방된다는 얘기는, 간단히 말해 북한에서는 그동안 없었던 계급이 생겨나고 토지의 가치가 생긴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를 반영하는 새로운 주거 타이폴로지가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평양의 사회 구성과 도시 조직을 반영하는 새로운 타이폴로지의 개발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남북한 도시/건축 교류

이전까지의 대북 사업들이 경제 협력이나 인도주의적 차원, 그리고 사회 문화적인 교류로 많이 진행되고 있는 듯 하다. 도시/건축의 전문성을 띠고 할 수 있는 교류들이 있겠는가. 임동우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한 명의 건축가로서 건축계에 던지고 싶었던 화두가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그 동안 북한의 건축과 도시에 깊이 연구해 오신 선배님들이 계셨지만, 그러한 노력의 맥이 지금은 좀 단절된 느낌이다. 그래서 좀 더 젊은 세대의 시각으로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 그 동안 북한의 도시와 건축 자체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있었다면, 이제는 미래를 준비하는 화두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한 입장에서 ‘앞으로 평양이 개방된다고 하면 평양의 도시 조직은 어떻게 바뀔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다른 수많은 질문들이 있을 것이다. 평양의 많은 기념비적 건축물에는 모자이크와 북한산 대리석이 많이 쓰이는데, 어떤 이는 ‘국내 프로젝트의 마감 재료에 북한산 대리석을 쓰면 어떨까’, ‘컴퓨테이션을 이용한 패턴을 북한의 모자이크 제작 기법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작은 관심과 언론이나 출판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노력이 그 시작이지 않을까 싶다. 이후에 북한 건축계와의 교류나 국제 건축계에서 북한 관련 화두를 이끌어 나아가는 것은 그러한 작은 노력들이 모여서 이후에 결실로 나타날 때쯤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건축계에 국한 되지 않고 사회 전반에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그 동안 한국에서 북한에 대한 모든 논의는 통일을 전제로 해서 이루어진 것 같다. 하지만 통일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을 것인가. 전제로 한 것은 ‘개방/변화' 였다. 시기가 언제가 되었든 북한의 개방은 정해진 수순이다. 이후 그 시장을 한국이 선점할지, 중국이 할지는 모를 일이다. 지금 유리한 위치에 있는 중국에 시장과 경제가 선점된 이후에도, 과연 북한이 남한과 통일을 하고 싶어 할까,는 굳이 묻지 않아도 쉽게 답이 예상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평양은 도시/건축적으로 충분한 잠재성이 있으니, 우리가 먼저 교류하고 선점해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시작하고 싶었다. ⓦ

임동우  1977년 생.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의 저자로, 현재 미국 보스톤에서 프라우드(PRAUD; Progressive Research on Architecture, Urbanism and Design)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며, 건축 프로젝트와 여러 리서치들을 진행 중에 있다. 연구는 도시 컨텍스트와 연계한 건축적 타이폴로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이를 통한 도시의 점진적인 변화(Integral Transformation)에 관심을 갖고 있다.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로 입학하고, 이후 건축공학과로 전과하여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도시설계 건축학을 전공하였다. 한국의 정림건축과 미국 마차도 & 실베티 어소시에이트(Machado-Silvetti Associate)을 비롯하여 일본(Maki & Assoc.)과 네덜란드(West)에서 실무 경험이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