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도시의 최종심급,
외국인 밀집 주거지역 안산 원곡동
키릴 문자로 된 간판이 빼곡하고, 한 여름에도 전시되는 무스탕, 두꺼운 장갑들로 자연스레 러시아를 연상하게 되는 부산 초량동의 외국인 상가 거리(텍사스거리)는 인근 차이나타운(상해거리)과 함께 이국적인 풍취를 자아낸다. 외국인 밀집 지역 가운데에서도 조계지, 외국 군대, 사원 등이 계기가 되어 외국 관련 시설의 주변 지역에 형성된 유형이다. 인천의 차이나타운 역시 같은 유형이며, 이들 모두는 상업지역으로 형성되었다. 이태원 관광 특구와 이슬람 중앙성원이 있는 이슬람 거리, 한남동 외국인 마을, 혜화동 필리핀 장터들은 각국의 대사관이나 문화원, 종교 시설을 중심으로 형성된 외국인 밀집 지역이다. 혜화동 필리핀 장터는 혜화동 성당에서 필리핀인들을 위한 미사가 마련되면서 주말 나들이를 나온 외국인들이 장터를 벌이는 곳이다.
그리고 서울의 ‘작은 프랑스’와 ‘리틀 도쿄’라 불리는 서래마을과 동부이촌동의 일본인 마을은 학교, 대사관이나 각국의 한국 주재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외국인 주거지이다. 한성 화교학교가 있는 연남/연희동 차이나타운도 비슷하다. 광희동 러시아/중앙아시아촌, 창신동 네팔인촌 등은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의 보따리 상들이 동대문 일대 의류 시장을 찾기 시작하면서 서울 중구 광희동 일대는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촌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거주하지는 않으면서 정보 교환의 거점이 되는 광희동 몽골 타운과 같은 경우도 있다. 가리봉동 조선족 거리, 대림동 조선족 마을, 자양동 조선족 거리는 안산시 원곡동과 같이 대규모 산업 단지 주변에 형성된 거주지가 있고, 유사하게는 남양주 마곡에도 형성돼 있다.
국내 외국인 밀집 지역이 몇 곳인지에 대한 정확한 집계는 없으나,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도되는 것들 가운데 대표적인 곳들이고 대부분 1990년대 들어 눈에 띄게 형성된 지역들이다. 대체로 외국인 노동자는 주로 산업 단지 주변에, 결혼 이민자는 전국적으로, 유학생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전문 인력은 대도시 중심으로 분포한다. 국적별로 분포하는 공간의 특징 역시 차별화된다는 분석이 있다. 그 중 외국인 노동자 밀집 주거지로 대표적인 곳이 안산 원곡동인데, 반월공단이라는 산업 단지 주변의 노동자 배후 주거지 유형을 대표하며,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 밀집 지역으로 가장 상징성이 높은 지역이다. 2005년부터 시 정부가 다문화를 ‘사업화’하면서 관심을 보이고 있고, 40여 개의 시민단체들이 이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중 <지구인의 정거장>은 김이찬 감독이 운영하는 안산영상프로덕션이고, <국경 없는 마을>은 박천응 목사가 운영하는 이주민센터이다. 공교롭게도 서로 다른 두 이름에는 다국적 시민들의 정주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이 담겨 있다. 관련 자료 제공/김용승+임지택(한양대학교 건축학부)
인사이트 아시아 & 인사이트 안산
안산역에서 원곡동 사무소까지 이르는 약 400m 거리, ‘국경 없는 거리’라 불리는 이곳을 중심으로 낯설고 독특한 풍경들이 가득하다. 열대 과일과 각종 허브를 파는 식료품점, 유독 눈에 많이 띄는 이동전화 대리점과 전화방, 블록의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은행들, 일자리를 소개해 주는 용역 회사와 월셋방 임대 거래가 이루어지는 부동산업체들이 거리의 이면에 밀집해 있다. 다른 골목으로 돌아 들어가면 연변식 오리 고기와 전문 음식점이 아니면 쉽게 접할 수 없는 개고기가 시장에서 사고팔리고, 사천식, 태국식, 베트남식 면요리 음식점 등, 문화권별로 독특한 먹거리와 풍물들이 600×600m의 블록 안에 집적돼 있다.
이 지역의 주말은 다른 지역에서 원정 오는 외국인들로 특히나 더 붐빈다. 특별히 이곳으로 모이는 이유는 자국의 언어로 의사소통이 되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생활에 필요한 정보와 각종 인프라가 지원되기 때문이다. 주택 임대료가 저렴하고 교통이 편리하다. 사실상 안산 원곡동이 외국인 노동자 밀집 주거지역으로는 국내에서 최대 규모로, 등록 외국인을 기준으로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의 국적은 60개국에 이른다. 그러면서도 절대 다수가 한국계 중국인(조선족)으로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거주하는 외국인 분포에서는 양극화된 다양함이 존재한다.
1990년에는 대만, 미국, 일본 국적의 순의 외국인이 전체 87%를 차지, 중국은 0.3%에 불과하였다. 1990년대 중반 한중 수교와 외국인 노동자 유입에 따라 이러한 구도는 바뀌어 2008년 기준 중국 국적은 전체 외국인의 절반을 넘는다. 특히 중국 국적 중 한국계 중국인의 비중이 2000년 이후 급상승하여 전체의 42.5%를 차지한다. 그리고 한국계 중국인의 체류 자격은 노동자의 비중이 83.6%로 압도적이다(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연보). 한국계 중국인들은 한족 중국인들과는 달리,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고, 한국 문화에 익숙하여 한족 중국인이 종사할 수 없는 서비스 활동-요식업, 가사도우미, 간병인, 건설 노동자 등에 종사하고 있다.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한국계 중국인은 한국인에 의한 차별을 경험하기도 하며, 중국인 혹은 이등 시민으로 인식되어, 결국 스스로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도판 1. 내국인 외국인 인구 변화 추이
도판 2. 외국인 체류 자격별 현황
원곡동에 대해 안산시가 특별한 시선을 보인 것은 지난 2009년 기획재정부가 다문화특구로 승인하면서 부터이다. 안산시의 다문화특구는 원곡동 795번지 일원(367,541m2)으로, 총사업비 186억 원을 들여 특구 지역 내 다문화원 건립, 특화거리 조성, 외국계 음식점 관광식당화, 세계 전통 민속축제 개최 등 다양한 사업을 2013년까지 추진할 계획이다. 일차적으로 안산역 환승센터와 간판 정비, 국경 없는 거리와 만남의 광장을 조성하는 사업이 진행되었다. 또한 안산시청 앞의 ‘25시 광장’과 같이 도시 곳곳에 25시를 붙여, ‘25시 도시 안산’을 안산시의 별칭 혹은 캐치프레이즈로 사용한다. 쉬지 않고 항상 깨어 있다는 의미로 안산 시정이 이를 표방하며, 실제 원곡동의 주민 센터와 관련 기관들은 휴일에도 업무를 보고 있다. 특히 은행들은 본국으로 송금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휴일에도 개점을 하고, 내국인의 은행 업무는 보지 않기도 한다. 안산이라는 도시의 캐릭터가 외국인들의 삶과 무관하지 않으며, 적어도 안산시는 그것과 연관짓고 싶어한다.
도판 3. 다문화특구정책사업 01
도판 4. 다문화특구정책사업 02
이주민과 노동자의 도시 공간
안산시에 거주하는 등록 외국인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6% 정도다(2011년 10월 안산시 동별 인구 현황). 다른 도시에 비해 높은 편인데, 사회 변화와 정책적 요인들이 개입돼 있다. 안산이라는 도시의 형성이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안산은 1970, 80년대 수도권의 인구와 산업의 분산 배치를 위해 조성된 반월공단과 시화공단과 함께 공단 배후 주거지로 계획된 도시이며, 특히 원곡동은 이주민들의 집단 주거지로 형성되었다. 때문에 원곡동은 그 과정과 문제를 집약해 놓고 있다. 원곡동이 형성될 당시만 해도 수원에서 인천까지 가는 협궤 열차가 원곡역을 지나갔으며, 일대는 농지를 정리하면서 원주민들을 몰아 집단 거주지로 형성하면서 단층집들이 대량 건설되었고, 이주민 단지라고 불리기도 했다. 현재에도 원곡동 지역의 중심과 기점이 되는 곳의 이름은 ‘주택사거리’이다.
그러나 원곡동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른바 3D 업종 기피 현상이 보편화되면서, 공단의 쇠락과 함께 지역 자체가 쇠락의 길을 걷기도 했다. 공장 노동이 기피되고 취업 노동자 수가 감소하고 원곡동에도 새로이 유입되는 노동자 수가 줄기 시작한다. 특히 현재의 안산이 중앙역 부근으로 상권이 이동하면서, 급속히 공동화되기 시작하였다. 당시부터 지금까지 거주하고 있는 한 주민은 그 당시 오토바이 티켓 다방과 같은 성매매업소가 있기도 했다며, 지역이 슬럼화되던 시절을 기억한다. 그것이 1990년대 중반 이후 IMF 이전까지이다.
국내 노동자의 퇴거로 인해 원곡동 일대가 급속히 공동화되던 즈음, 빈방이 늘어나자 주택 임대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던 대부분의 주택 소유주인 한국인 원주민들은 파산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방을 내주기 시작한다. 정책적으로 대거 유입된 외국인 노동자들이 원곡동 일대에 거주하게 된다. 이것이 외국인 노동자가 원곡동 일대에 거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상 한국인 이주민들에 의해 형성된 원곡동은 IMF 이후 이주 노동자들이 다시 거주하게 되며, 현재에 이른다. 한편 외국인 밀집 지역 가운데 거주지로 형성되어 있는 서래마을과 가리봉동/대림동 지역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나는 내 이웃을 증오한다
지역의 구성원이 바뀌고 환경이 변화하는 것은 주거지와 함께 상업 공간과 커뮤니티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우선 외국인들의 고유한 식성과 기호를 공략하는 상점들이 그것이다. 중국을 비롯한 여러 동남아 상점들이 성업 중이고, 휴대폰 대리점, 그리고 송금을 위한 은행들의 입점도 늘었다. 또한 근래에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소개해 주는 용역 회사가 40여 곳에 이르고, 월세방 임대업이 왕성해지면서 부동산도 35여 곳으로 늘어났다. 이밖에 재활용 옷가게, 재활용 가전제품점 등 값싸고 실용적인 상품들이 인기가 많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 원곡동에 비해 근린상권이 주거 환경에 친화적인 방향으로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변화의 양상이 공공 자본이 투입돼 형성된 공공 공간과 거주민의 커뮤니티에서도 발견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안산 다문화포럼에서는 다문화특구 정책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국경 없는 거리’의 공간 사용 실태가 점차 사유화되어가고 있다는 것, 이 점에 대해 지역 원주민과 이주민들 사이의 인식 차이가 뚜렷하고 점차 갈등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발표하였다(YMCA 좋은 마을 만들기 지원센터와 한양대 다문화중심도시연구단의 협력으로 진행된 마을 디자인 대학의 모니터링과 실태조사 결과). 가로에 면해 있는 상점들이 내어 놓는 가판대와 이주민들의 노점들이 ‘국경 없는 거리’를 점유하며, 거리의 설치물들이 오히려 보행에 방해물이 되기에 이르렀다. 실제 대지경계선을 표시하기 위해 설치된 돌은 노점들이 그 위에서 물건을 두고 팔기도 하며, 고정되지 않아 이리저리 가로를 계속 움직여 다닌다. 또 하나의 정책 사업인 ‘만남의 광장’이 국적별로 만남의 장소가 따로 구분돼 있던 것을 하나의 광장으로 조성하면서, 이주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한국계 중국인이 ‘만남의 광장’을 점유하고 있다. 광장 내에서도 놀이를 위해 필요에 따라 바닥에 선을 그리거나 그림을 그리고 나면, 자치위원회나 정부에서는 무단으로 그려진 선을 끊임없이 지우지만, 또 다시 덧그리는 식의 끊임없는 숨바꼭질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이주 노동자들이 대거 몰리는 주말에 더욱 심화되어, 지역민들 간의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도판 5. 현황사진 폴더 안의 사진들
그 갈등은 쓰레기 문제에서 다시 한 번 극적으로 드러나며, 쓰레기 종량제를 실시하는 한국의 사회적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한 한국인들의 불만과 이주 노동자에 대한 낙인 효과가 뒤엉켜, 한국인 주민들에게 외국인 증가는 기존 사회질서의 붕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시 정부의 정책이나 예산 집행이 한국인에 대한 역차별이란 피해 의식도 강하다. 그럼에도 외국인의 존재가 점차 지역 경제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면서, 이를 어쩔 수 없이 수용하고 있다. 반면 이주 노동자에 대한 낙인이나 한국계 중국인에 대한 이중적인 인식은 탈낙인의 의지나 노력, 지역에 대한 정주 의식이나 애착이 없어, 한국인 주민과의 상호 인정과 교류가 그리 활발하지 않고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다문화 특구 지정 정책 사업에 대해 지나치게 물리적 정비 위주이고 성과 중심적이라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20년 가까이 ‘국경 없는 마을’ 운동과 이주민센터를 운영해오고 있는 박천응 목사는 다문화특구의 기획은 그 기초가 상업성과 시장성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국적인 것으로 시장을 활성화하려 한다면 이곳은 중국 일색이 돼버릴 겁니다. 다문화의 특성은 다양성에 있는데 말입니다. 다양성을 획일성으로 바꾸는 정책이 가시적으로 가장 많이 드러나는 것이 도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디자인 영역입니다. 도로만 깨끗하다고 해서 살기 좋은 마을이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도시 미관을 위해서라면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것이에요. 국경 없는 마을을 잘 디자인하려면, 스토리 개발부터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횡량한 빈 터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찾습니다. 스토리는 하드웨어를 더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마을을 디자인하려는 의도성과 지나친 개입보다는, 내버려 두고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방향을 잡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오히려 다양한 것들이 살아 숨쉬는 마을이 이주민에게도 좋고 한국인에게도 더 좋을 것입니다. 다양함을 통해 새로움을 배울 수 있고 수용할 수 있는 곳이 되고, 또 한 측면에서는 미처 생각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기회를 제공하며 뒤집어 보기나 틈새 보기 같은 것들이 가능해집니다.”
반면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는 데에는 다른 견해가 존재하기도 한다. 오히려 정해진 틀 안에서 가능성을찾는 것이 주요할 것이라는 입장을 모니터링과 실태조사를 진행했던 임지택(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전한다. “이러한 공공 공간의 점유 행태를 대개는 부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하지만 다문화나 이주민 노동자들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상인과 보행자의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런 지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 거리의 활력을 주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공공 공간의 점유 면적만큼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여기에는 사회적 합의를 위한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내국인이나 상인들은 좋아할 수 있겠지요. 이런 점에서 원곡동을 도시 건축적으로 읽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정책의 실현이나 문제를 찾기 위해서는 복잡한 이해 관계와 사회 변화 흐름을 놓치지 않고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는데, 현재로선 이런 연구 자료들이 거의 없어요, 공간적인 해법이나 대안을 위한 실제적인 공간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원곡동에는 지역주민센터가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하나는 원주민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원곡동주민센터, 또 하나는 이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주민지원센터이다. 다문화관련 정책이 추진되면서 중앙정부와 시정부가 이 지역에 지원 시설을 마련한 것이다. 같은 모습으로 나란히 있는 두 주민센터가 주민의 특성에 맞게 특화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건립되었지만, 덕분에 주민자치위원회 역시 한국인자치위원회와 이주민자치위원회가 별도로 구성되었다. 게다가 대형 교회와 같은 외부의 민간단체들도 지원 시설을 설치하면서 원곡동은 ‘외국인 지원 정책의 전시장’이 되어가고 있다. 정작 외국인 커뮤니티의 활력은 줄어드는 반면에 지원 시설이 증가하는 현상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도판 6. 도시구조분석 폴더
#1 BUILDING STRUCTURE 원곡동은 4,5층 위주의 저층 주거가 밀집해 있으며, 대부분이 단일 필지로 이루어져 있다.
#2 도시 프로그램(용도) 대로변과 중심 가로를 주변으로 상업 시설이 분포하고 있으며, 가로에서 한 켜 이상 들어간 곳은 주로 주거가 위치한다. 중심가로 기준으로 곳곳에 환전소, 은행 등 각종 편의 시설이 위치한다.
#3 주요 시설 안산역은 지하철 4호선의 종착역(오이도역과 함께)으로서, 서울권으로 이동을 도와주며, 다문화 특구와 반월공단의 영향을 받아 근로자 진료소, 외국인 업무를 전담하는 주민센터 등이 위치한다.
#4 오픈 스페이스 서측에 위치한 공영 주차장은 밀도 높은 원곡동의 주차 문제를 해결해 주며, 곳곳에 공원과 소규모 광장을 조성하여 사람들에게 커뮤니티 공간을 제공하게 하였다.
도판 7. 공간사용실태 폴더
게토를 형성하는 도시 구조와 쪽방촌의 변화
원곡동의 상업 공간을 둘러싼 변화와 달리, 지역 내 주거 유형과 주거지로서 풍경이 변화하는 것은 점진적이지만 보다 가시적이다. 이러한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라, 지역 내 주거지들은 여러 가지 주택 유형이 공존한다. 하나는 원주민들과 초기 입주자들이 지은 단독주택인데 소수만 남아 있다. 다음으로 1980년대에 공단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공단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기존의 단독주택을 10여 가구를 수용할 수 있도록 개조한 주택들이다. 일반적으로 쪽방 구조라고 하는 유형으로, 복도를 외부로 두어 층마다 회랑을 두고 있는 주택들이다. 또한 처음부터 임대를 목적으로 지은 다가구 주택들이 있는데, 단독 필지 안에 20여 가구 정도를 수용한다. 이들의 1가구 면적은 대개 23-33m2 정도이다. 그리고 나머지 건물들은 1990년대 이후에 지어지기 시작한 것들로서 이 역시 대부분이 임대주택들이다. 또한 공단 지역의 노동자들 숙소가 되었던 쪽방 구조의 주택들이 점차 원룸 구조의 다세대 주택으로 바뀌면서, 서울이나 대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과 비슷해지고 있다.
이와 달리, ‘국경 없는 거리’를 지나 주택이 밀집한 지역으로 들어오면, 원곡동 전체를 에워싸는 6, 8차선의 순환도로로 나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반드시 목이라고 하는 곳을 거쳐야 외부로 나갈 수가 있다. 원곡동은 직교형 가로 체계와 양파와 같이 한 겹씩 중심을 감싸고 있는 블록 형태의 환형 구조로, 블록의 내부로는 열려 있고 바깥으로는 닫힌 구조때문이다. 오히려 원곡동의 도시 구조적 특성에서 주거 환경으로서 가능성을 찾아 볼 수도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끼리 공동체를 이루고 그곳을 편안하게 느낄 수 있으며, 한국인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되지 않아 주변과 적절한 단절을 만든다면 게토를 이루기에 좋은 구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들만의 게토를 형성하는 것은 정서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것이며, 주거 환경으로서도 나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사회적 환경에 맞는 주거지로서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임지택).”
한편 이 같은 구조는 원곡동 이외에도, 안산 지역에서 육각형의 직교 방사형 가로 패턴을 띠는 블록이 두 곳 존재한다. 안산이 계획되던 당시, 유럽 도시에서 절대 군주의 힘을 상징하는 방사형 도시나 전원도시의 영향을 받았을 것을 추측할 수도 있겠지만, 방사형 구조로서 결절점들은 갖지 못한다.
도판8. 주거유형 폴더
건축과 도시는 사회의 산물인가
다양한 국적의 시민들과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안산 원곡동의 문제점은 공간의 사용 실태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고 있다. 동시에 사회적 인식과 편견의 부조리와 모순이 내포돼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현상이 주는 의문은 과연 건축과 도시가 사회의 산물인가, 하는 점이다. 건축과 도시는 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기능을 수용하지만, 사회 환경을 구성하고 영향을 미치면서 사회 체제와 형태 또한 유지하고 수용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외국인 밀집 지역을 보는 시선은 이렇다 할 만큼 열려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그 와중에 안산 원곡동의 건축과 도시는 방향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안산 원곡동의 외국인 밀집 지역은 도시 하위 계층의 분리된 공간이자, 외국인들의 정체성의 근거이기도 하며 동시에 이색적인 풍물로 급속히 상품화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조성된 공간이 아니며, 사회적 관계를 내재하고 변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도시사회학자 장린(Jang Lin)이 적절히 지적하고 있듯이, 외국인 밀집 지역은 오늘날 독특한 풍물을 상품화하는 관광지로서, 지역 주민의 삶과 도시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활성화된 외국인 밀집 지역은 동시에 이 지역을 해체시켜 버릴 수도 있는 초국적 자본의 축적과 도시 재활성화의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인터뷰이_김용승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글로벌다문화연국원 다문화중심도시연구단 단장, 임지택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박천응 목사/ 안산이주민센터, 김정호 원곡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이현선 YMCA 안산 좋은 마을 만들기 지원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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