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주(李愛珠)
7살(1954)부터 ‘이왕직 아악부’(국립국악원의 전신)의 아악수장 김보남으로부 터 춤을 익혔다. 서울대학교 진학 후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초대 보유자인 벽사(碧史) 한영숙(1920~1989)을 사사했으며, 1996년에 스승을 이어 2대 예능보 유자로 지정되었다. 이로써 전통춤의 뿌리이자 원류인 한성준(1874~1941) 선생과 손녀 한영숙으로 이어져온 전통춤(승무, 살풀이춤, 태평춤, 학춤)을 계승하는 한국 무용사의 큰 맥이 되었다. 학술적 연구도 중요하게 여겨 한국 전통춤을 체계적으 로 정리하는 한편, 선생 자신이 한성준-한영숙으로 이어받은 전통춤의 본질과 정 신을 역사적으로 조명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1984년 춤패 ‘신’을 결성하여 「나눔굿」, 「도라지꽃」 등을 창작 ‧ 발표하는 한편, ‘현실과 발언’ 등 민족미술 ‧ 민족음악 ‧ 민중연극인들과의 공동작업으로 ‘예술 의 사회참여’라는 시대적 과제에 모범적 선례를 만들었다. 1987년 6월항쟁의 한 복판에서 온몸으로 시국을 가르는 「썽풀이춤」, 「바람맞이춤」을 춤으로써 춤의 사 회적 과제를 부각시켰고, 이후 제주 4.3 사건의 기억과 전태일 열사의 분신, 광주 5.18 민중항쟁의 상흔을 ‘몸’으로 각인함으로써 한국무용계의 흐름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전통춤과 창작춤뿐만 아니라 몸 움직임의 근원과 춤의 본질을 화두 삼아 오랜 시간 연구하여 자연춤, 한밝춤, 생명춤 등으로 우리 춤의 본성을 정리하였고, 이를 통해 한국 춤의 역사적 · 학술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우리 춤의 근원을 찾아가는 과 정에서 특히 고구려 춤의 원류와 상징체계를 탐구하였으며, 가무악의 뿌리인 영가 무도(詠歌舞蹈)를 연구 ‧ 복원 ‧ 재현하는 등 민족춤의 시원을 찾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전방위 춤꾼이었다.
국가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서 한국 전통춤 정립에 매진하는 한편 후진 교육 과 양성을 위해서도 정성을 쏟았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 명예교수, 경기아트 센터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2021년 이애주문화재단을 설립하고 같은 해 5월 10일 타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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