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건축
2009 원도시 아카데미 세미나 제 4차/구영민(인하대 교수)
1960년대로 기억하는데, 콜롬비아나 하버드 대학 출신의 젊은 건축가들이 자신들의 건축적 입장을 표방한 적이 있다. 그들은 풀뿌리 시민들의 입장에 서서 정부에 대항하였는데, 그로 인해 오늘날 뉴욕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어떤 건축 정책이나 건축 행위가 함부로 일어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곧 건축가는 지역이 만드는 것이며, 그 나라가 만들고 토속적인 풍토가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 자기 동네의 풍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상을 전혀 무시한 채 건축이라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해 목숨을 걸고 불철주야 노력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 실상이다.
이 강의는 최근 인천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리포트이다. 인천이라는 한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역에 있는 대학의 한 교직원으로서, 현 인천에서 벌어지는 것에 대해 느꼈던 것과 내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를 비판적 안목에서 보고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물론 얘기 중에 좋다 나쁘다, 또는 비판적 견지에서 보거나 (인천건축재단의 대표로서 다분히 그 입장을 고수하거나) 미온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얘기들은 해법이라기 보다는 문제 제기에 가깝다. 또한 이 세미나의 목표가 오늘날 갑갑한 건축 세계의 출구를 찾는 입장이고, 지금 여기 계신 분들이 대한민국의 건축계를 이끌어 갈 젊은 건축가들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시대정신과 일종의 저항 정신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강의를 시작하려 한다.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도시 건축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는 두 사람을 거론해 보자. 미국 건축가 다니엘 번햄(Daniel H. Burnham)과 정치학자 마샬 버만(Marshall Berman)이다. 이 둘을 거론하는 것은 오늘날 서울이나 인천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 방향을 설정해 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림1)
21세기 한국의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들여다 보면 정치적으로는 떳떳한 이유가 있다. 새로운 기틀을 가진 경제 시스템이 들어오고, 그 경제 시스템에 의해서 또는 좀 더 정확히 말해, 정치가들이 당연하다고 말하고 만들어 내는 모든 것(턴키 발주나 강력한 도시계획 등)에 의해서 하루아침에 도시가 그려지고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우리의 건축가들이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지금 한강 르네상스, 인천의 신도시, 그리고 각 도시마다 벌어지고 있는 계획들의 공통점은 대부분이 수직의 욕망(Desire of Vertical)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니엘 번햄은 이런 수직적 욕망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작은 계획은 만들지 말라.” 다니엘 번햄이 한 이 말은 작은 계획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를 권유한다. 왜냐면 작은 계획에는 인간의 피를 용솟음치게 하는 마술이 없으며 아마도 그 자체는 실현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희망과 일에 의해서 목표를 높이 잡고 큰 계획을 만들면 한 번 기록된 드로잉과 계획은 죽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죽은 다음 점점 더 맹렬히 스스로를 주장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런 교훈을 토대로 다니엘 번햄의 후예들이 만들어 놓은 뉴욕과 시카고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도시들로 남겨져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장대한 선언이 있은 후 75년 정도 후에 정치학자 마샬 버만은 상반되는 주장을 편다. 그가 말하기를, “큰 계획은 인간이 가장 파괴적으로 알고 있는 모든 것이었다. 그 음모는 추악하고 더러운 돈 거래와 벼락부자를 끊임없이 만들어냈으며, 끝없이 배출되는 쓰레기와 소음, 그리고 고밀도로 인해 황폐화된 서민 생활과 사회적 가치의 보상 없는 조직된 죄악 등의 온상을 만들어 낸다.” 당시 서구, 특히 미국에서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만들어질 때마다 사람들이 공포와 혐오에 몸을 움츠리기 시작했다, 라고 회고한다.
만약 르 코르뷔지에의 ‘인구 3백만을 위한 도시’가 그대로 실현되었다면 어떠했을까. 이 계획안은 샹제리제를 가로질러 센느강 주변으로 실제 세워질 뻔했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가 파리에 갈 일은 없어졌을 것이다. 유럽을 가도 파리만 빼고 다녔을지 모른다. 인구 3백만이면 현재 인천과 비슷한 규모다. 그런데 그 계획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실현되는 듯하다. 과거에는 대통령 선거 공약이기까지 했던 주택 이백만 호 건설과 한반도 대운하를 비롯해 매년 50만 호 주택 공급 계획은 현재 우리 상황을 말해 주는 것들이다. (그림2)
한편 1970년대 ‘프루이트 이고(Pruitt-Igoe) 아파트의 폭파 철거’ 사건은 아파트가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니라 범죄의 온상이 돼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알다시피 프루이트 이고 아파트는 세워진 후 20여 년 간 삶 자체를 해체하였다. 마샬 버만의 이야기처럼 도시에는 눈에 보이는 도시와 눈에 보이지 않는 도시가 항상 공존하게 돼 있다. (그림3)
다니엘 번햄과 마샬 버만의 계속된 논쟁을 우리에게로 가져와 보자.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처럼 평소에 건축과 문화, 그리고 사회의 연관성을 심각하게 논하던 사람들이 수직 개발을 통한 세계화의 미명 아래서 정치적인 자세를 취할 때는 언제 어디서나 거의 어김없이 침략자의 편이 돼버리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들은 안정된 근린지구를 파괴하는 데 적극 찬성하고, 환경과 경관을 해치는 초고층 건물을 랜드마크로 추켜올리며, 앞바다가 졸지에 육지가 될 때마다 소위 ‘비전’이라는 뚜껑으로 이를 덮어 버리곤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위안하겠지만, 그래도 이런 것에 대한 비판과 함께 뭔가를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앞으로 지금 현재 상황을 돌파할 출구는 없을 것이다. 인천의 경우도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을 ‘비전’이라는 뚜껑으로 덮어버리고 선거철의 표어로 둔갑시키는 일이 다반사다. (그림4)(그림4-1)
V+M+HC=CfZ
What came first, the City or the Dream?
영국의 도시학자인 슘 바사(Shumon Basar)의 공식을 통해 ‘도시가 먼저냐, 꿈이 먼저냐’를 생각해보자. 여기서 ‘V’는 Vision, ‘M’은 Money, ‘HC’는 History and Culture이고, ‘CfZ’는 City from Zero의 약자다. 전 세계가 글로벌의 환상에 빠져 있는 이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비전’의 문제다. 이 등식에서 비전은 뭔가 목적이 숨겨져 있는 전략적인 비전을 말한다. 이와 관련하여 몇몇 도시를 살펴보면, 상해의 푸동과 같은 아일랜드폴리스(Island-polis; 섬 안의 도시)나 에코노폴리스(ECOno-polis; 생태경제도시)가 있다. 에코노폴리스에서 생태(ECO) 후미에 ‘~no'를 붙여 역시 경제적인 것에 근간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이 할리우드폴리스(Hollywood-polis)인데, 현재 인천의 역사 복원 차원에서 진행되는 차이나타운, 조계지 복원을 두고 일컫는 것이다. 실제 인천의 중앙동 지역의 조계지는 과거 일본과 청국을 그대로 옮겨 오고 있다. 건물의 껍데기를 일식으로 바꾸고, 차이나타운 거리의 벽에는 삼국지의 내용을 만화로 그려 놓았다.
역사와 문화를 지키기 위한 ‘복원‘ 사업이 사실 역사적인 모든 이웃을 파괴하고 있다. 그래서 역사와 문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을 장식하는 할리우드 효과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고 있다. 오늘날 벌어지는 역사 복원과 재생은 ‘역사와 문화’의 이름으로 기존의 모든 실생활, 일상을 없애도 된다는 위험한 발상을 동반하기도 한다. 이 공식에서 ‘역사와 문화’의 가치는 덧붙여진 것이고, 미래 도시에 견주어 구도심은 큰 계획을 위장하기 위한 인질에 지나지 않는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서 세계의 위대한 도시들은 황폐화되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 도시의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미래(future)라는 것은 아직 도달하지 않은 것이니, 허구에 지나지 않다. 이러한 때에 글로벌리즘의 담론이 형성되면서 물리적 공간은 무너지고, 인구의 감소와 경제활동 침체가 일어난다. 특히 최근에 미국에서 벌어지는 투기형 부동산으로 빚이 늘고 파산하는 등, 전체 회로를 형성했던 세계 도시의 경제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실상 20세기의 몰락이 도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동안 공간, 장소, 역사의 인문학적 측면에서 도시를 많이 관찰했다면, 오늘날의 도시는 부의 분배 측면에서 기능적으로 평가된다. 즉, 글로벌리즘의 전략적 도약을 위한 복합적이고 전문화 된, 그리고 광대해진 경제 회로의 효율적 경영을 위한 서비스 공간의 측면에서 정의되고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두바이를 보자. 이 도시는 글로벌 담론을 지지하며 사막에서 기적을 일으킨 복합 공간이다. 그 기적은 굉장히 전략적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지금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이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인천이 그 대표적인 예다. 바다-하늘-육지를 연결하는 ‘트라이 포트(Tri-Port)’를 기본 개념으로 하는 인천경제자유구역(IFEZ; Incheon Free Economic Zone)은 항구와 공항을 통해 물류와 인력이 들어오고, 이를 활용할 국제업무/컨벤션 지역, 외국기업들을 유치해서 돈을 벌어들이게 할 국제금융지역까지, 도시의 기능을 보다 전문화시키고 있다.
여기서 항만이나 공항이 발달된 도시, 즉 전략 도시들은 인터시티(Inter-City), 혹은 매개 도시라고 부른다. 여기서 매개는 기본적으로 돈을 뜻하고 도시는 돈을 매개로 경제화된다는 것이다. 곧 매개 도시의 지형학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글로벌 정치-경제, 문화 공간, 그리고 새로운 유형의 정치적 공간을 위한 인프라가 조성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도시들은 글로벌 회로에 접속되어 글로벌 조직 속에서 사회의 복합 매개와 금용 구조를 지원하는 공동체로서 재정의된다. 인천은 송도 신도시, 인천 서북부의 통합, 그리고 외곽과 중심의 연계 등을 도합하여 2020년까지 3개의 도심과 5개의 부도심을 구축하게 된다. 중동, 부평, 송도가 도시로 승격하면서 2020년까지 인천은 비즈니스와 국제교류, 첨단산업 물류, 관광의 도시로 발돋움한다. 인천은 새로운 도시가 된다. 대단하다, 인천! (그림5)
붐! 글로벌 명품 도시
오늘날 인천의 모토는 ‘명품 글로벌 도시’이다. 명품이란 보통 생각하듯 무조건 비싸고 고급스런 것이 아니라, 귀중한 역사와 아우라를 갖고 있어야 할 진데, 새롭게 만든 도시가 명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닌가. 명품 도시가 되려면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1995년 이후, 송도는 인천의 정체성 혼란을 21세기 미래 시대로 연결시켜 주는 결절지가 되었다. 송도 신도시의 계획이 렘 콜하스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렘 콜하스의 암호를 아무도 풀지 못하던 와중에 케이피에프(KPF)가 형상만 풀어낸 게 바로 이 계획이다. 사실 이 계획은 뭔가 계산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사고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림6)
송도 신도시는 130년 전의 인천 조계지를 재연한 것이다. 조계지는 소위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특별 구역으로 지정된 장소였다. 소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송도 등은 21세기의 조계지를 표방하며 외국인들에게 경제 활동의 자유를 주고, 세금을 감소해 주며, 고용 촉진을 증대하려는 전략적 인공 도시인 것이다. 이 새로운 조계지는 바다를 메우면서 엄청난 규모로 건설되고 있다. (그림7)
상해의 푸동은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유명 건축가들이 지은 건물들로 채워져 있다. 그 가운데 상하이가 추구하는 것은 전 지구화된 도시다. 장소나 개념보다는 세계화, 국제화가 몰고 다니는 스타일과 전략이 중심에 선 도시다. 오늘날 주거용 아파트 선전에서 기능과 실용성에 대한 광고 보다는 대략 서구의 생활을 그리거나 아예 연예인을 보여주는 광고가 먹힌다는 사실이 이러한 도시가 성립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파리 근교의 빌라의 모습을 흉내 낸 중국의 아파트 광고가 던지는 메시지를 보자. ‘여기에 살면 마술같이 파리 교외에 살고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라는 거짓말 광고다. 우리의 경우도 유사하다. 모 배우가 ‘마이 스페셜 러브’라고 하는 아파트 광고에서 보여 주는 것은 장소성, 주거 공간이 아니라, 그 배우의 스타일과 연정이다. 이미 세계화, 국제화의 요구 속에서 건축의 동향은 모두 설계가 아닌 스타일로 재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글로벌 서비스 시대의 도래다. 어느 나라든 모든 사람이 찾을 수 있고, 아무 곳에서나 이용이 가능한 맥도널드, 스타벅스의 서비스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편안해졌다. 음식의 나라 중국에서 정크 푸드라고 하는 맥도널드가 팔리고 있다는 사실은 세계화를 통한 균질화가 얼마나 강한가 하는 증거이며, 근본적인 목표는 서비스 목표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림8)
도시가 폐허가 되는 방법 How to Ruin the City
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들여다보면 거의 혼혈, 혼합된 문화의 생성이다. 이름을 거론하지 않아도 다 알만한 외국 건축사들의 작품이 도시공간을 도배하고 있다. 건물뿐 아니라 도시계획까지, 그들만의 글로벌 언어로 바벨탑을 쌓는 것이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 공간에 대한 배려는 없다. 장소에 대한 관념은 사라지고 큰 덩치와 형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더욱이 이런 괴벽스런 탐욕이 지금 대한민국 모든 건축과 학생들의 머리 속을 혼란시키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다. (그림9)
벌거벗은 임금님을 향해 아름답다고 얘기하는 것을 좋다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잘 맞는지 안 맞는지를 우리 스스로 자성해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외국건축사들이 만들어 내는 작품 도시에서는 담론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을 문제시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한 개인 건축가들이 만들어 내는 글로벌 담론이 한 나라의 건축의 역사가 돼버리는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또한 콘크리트나 유리로 동질화된 환경을 만들고 모르는 언어를 우리 것인 양 무조건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실체를 벗어나 허구적 트렌드를 껍데기로 감싼 명품으로 도시를 가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들이다.
중국 건축가 왕진화가 힘이 아닌 문화의 식민지로 전락할지 모를 중국을 걱정하며 던진 말에서 우리의 처지를 되돌아 봐야 한다. “자신의 커뮤니티에 대한 인지 방식 없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방식으로 자신의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인식하는 사회는 결국 다른 사람들의 사회를 위한 종속체와 기생체가 되고 만다.”
쿼 바디스 Quo Vadis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입체 고가도로는 상해에 실재하는 것이다. 계획해서 지은 것이 아니라 건축물을 계속 쌓아 올리고 이에 따라 도로를 덧붙이다 보니 나온 결과다. 이런 괴물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도시는 출구 없는 방과 같은 것이다. 서울과 인천, 또는 경기도의 경계가 있었다면 지금 경계와 경계 사이에는 매개 도시가 들어서고 있다. 부천 쪽의 중동과 상동이 그런 매개 도시다. 그곳에 고가도로나 고속도로를 연결하고 자동차를 이용해 도시로 드나드는 것들이 사실상 도시를 관찰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지 오래다. (그림 10)
또 다른 문제는 도시 동질화 현상인데, 두바이 같은 도시는 넘쳐나는 천재들의 재능으로 오갈 데 없는 공간이 돼 버렸다. 두바이뿐만 아니라, 상하이 푸동, 말레지아 등등 사막 위에 지어진 전 세계 천재 건축들 자체가 사상누각일 수 있다. 거대도시의 시장은, 바로 이런 점을 노려 인식되기 쉽고 눈에 띄는 것이라면 모두 글로벌 시장의 이미지로 환원시키고 있다. 작은 단위에 의해서 도시 풍경이 동질화되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인천은 동북아 허브 도시(Hub City)를 꿈꾼다. 상하이도 아시아의 허브라고 하며, 블라디보스톡도 동북아의 허브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아시아 주변의 여러 국가에서 몇 년간 벌여온 공통적인 일들은 대규모 공항을 만들고, 공항을 만든 뒤에는 공항을 중심으로 공항 도시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거대 물류 도시가 한국의 아이콘이 되고 있다는 것과, 글로벌 도시 경제가 요구하고 있는 최신식 서비스 복합 주거 단지에 지나지 않는 신도시가 오늘날 도시의 아이콘이 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들이 실질적으로 인터시티로서 전 세계 글로벌을 하나로 연결하는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것과 그로 인해 도시 풍경이 동질화되어 간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그림11, 12, 13)
또한 대규모의 시장을 수용할 수 있는 육중한 도시의 지형학이 커지고 또 다시 메가(Mega)형 도시가 구축된다는 것도 미래 도시의 문제로 지적된다. 이렇듯 규모가 확대되고 표준화된 시설을 가진 후, 세계적 수준의 문화와 도시 시장을 구축하고, 글로벌 경제가 요구하는 동질화된 최신 시설을 구비한 기능 도시로 태어나는 것이 오늘날 도시의 실상이다. 즉, 서비스 복합 단지를 구축하는 것이 도시의 목표가 돼 간다. 고착성과 장소성이 사라진 글로벌 도시가 도시의 원형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이러한 도시는, 흐르는 도시로 변모한다. 늘어나는 것은 다양한 교통수단뿐이다. 도로가 증설되고 고가도로가 생겨난다. 그런 다음 적절한 공간 구성보다는 도로 사이사이 나무를 심어 이를 에코 스페이스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구도심의 재생이 뒤를 따른다. 재생을 하면서 관광도시, 역사도시라는 이름을 붙이고, 재생이라는 이름 아래 기존의 것을 다 부수고 하이테크 건축, 가상 공간, 시뮬라크라, 테마 공원 등을 유치하면서 여러 가지 기능화된 공간을 삽입한다. 그래서 인천의 구도심들은 사실상 거주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환경을 만들고 있다. 거주자를 위한 공동 영역과 스케일이 없는, 우리의 몸과는 관계없는 공간들이 자꾸 생겨나고 있는데도 이를 글로벌 도시라고 포장한다.
이러한 작태는 결국 정치적으로 자극적인 착상에 의해, 작은 도시에 세계적인 규모의 옷을 입히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다국적 인구가 모여 살게 될 지구촌에서 지역성이 배제된다는 것이야 말로 매우 위험한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텅 빈 메가 도시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 우려가 된다. 모든 계획은 필연적으로 지역사회의 규모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 민주적인 사회를 구현하는 길이며, 그 취지나 달성 목적이 지역적인 것에서 나와야 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큰 것에서 출발해 작은 것은 끝에 가서야 고려한다는 것이 문제다.
마지막으로 ‘탈출구’를 제안한다기보다는, ‘연(緣’)’이라는 화두를 던져 보고자 한다. 인연의 ‘연’을 뜻하는 이 글자와 비슷한 말을 영어에서 찾는다면 컨버징(Converging)일 것이다. 다시 말해 무엇과 무엇을 연결해서 다른 무엇이 일어나게 해 주는 과정에서 그 무엇이 일어나게 해 주는 보이지 않는 힘, 다시 말해 관계의 단층이라고 하겠다. 그 은유적인 의미는, 하나의 매개체로서 매개적인 상황, 매개적인 원인을 통해 결과가 일어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래서 원인을 제공해 주고, 그 효과가 어떤 프로세스로 나타나는지를 스스로 보는 관계이다. 씨를 뿌리면 볍씨가 잘 자라 밥상에 올라올 때까지 필요한 것이 있는데, 이는 알맞은 물의 양, 알맞은 흙, 알맞은 온도, 햇빛이다. 이들이 바로 ‘연’의 운명을 가진 것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층적으로 나누어진 도시 공간의 대립성을 어떻게 도시의 장소성이나 아우라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한다. 예컨대 배다리 산업도로 현장에서 도로로 쓸려 나간 마을과 엄청난 메가 스케일의 건축 투시도, 이 두 가지의 대립적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또 다른 그 경계를 우리는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가 문제의 중심으로 차고 들어온다. 또는 인천의 도시계획이 보여주는 주도심과 부도심, 부도심 사이에 끼어있는 동네들을 연결하는 중대한 통로 공간을 도시적 장소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대답은 하나다. 이제 다시 ‘작은 계획을 만들지 말라!’가 아닌 ‘큰 계획을 만들지 말라!’가 된다. ‘큰 계획을 만들지 말라’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될 것이다. 그래서 단숨에 끌어내는 투시도로 성급하게 도시를 만들려고 하지 말고, 연쇄 작용을 촉발시키는 기폭제를 만드는 건축가가 되는 것이 앞으로 21세기 도시를 책임지는 건축가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를 ‘침술 도시학(Acupuncture Urbanism)’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침술 도시학’은 도시공간의 문제가 있는 곳을 발견했을 때, 그 문제가 어디서 파급되었는가 하는 ‘혈(穴)’을 찾아 아주 작은 충격을 주는 입장을 고수한다. 문제의 근원은 그 장소가 아닐 수도 있고, 정 반대편에서 파급되었을 수도 있다. 아주 중요한 부분을 작게 건드려 큰 문제를 치유할 수 있다면 도시의 혼란을 비껴갈 수 있을 것이다. 맨하튼 하이랜드(웨스트 사이드의 고가철로)가 이러한 침술 도시학을 말해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산업화 유산인 도시 철로를 공원으로 재생시킨 것으로서 이를 중심으로 사실상 맨하튼 서부 지역에는 대대적인 개발 사업이 아주 소리 없이 일어나게 되었다. 기존의 고가 선로를 허드슨 강변을 산책하는 프로머네이드(promenade)로 만들고 그 위와 주변으로 새로운 건축물들을 집합시켜 놓았다. 생태 잡초를 심은 레일 공원. 사람들에게는 걷는다는 것 자체가 신화이고, 오래된 철로 길 위에 놓여진 이름 모를 잡초를 도시의 공중에서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도시에 즐거움을 제공한다. (그림14)
블루밍 트레인(Blooming Train)은 국제 건축가 연맹 공모전에서 당선된 작품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대되기도 했는데, 사실 침술 도시학을 생각하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이는 과거 수원과 인천을 잇던 산업 철도의 폐선 부지를 재활용하여, 태양열로 움직이는 폐차된 기관차를 커뮤니티 시설로 제안한 것이다. 이 움직이는 커뮤니티 공간은 하루 종일 주변 마을을 통과하며 기차 내에 도서관과 기타 물물교환 시설, 그리고 찻집 등을 제공한다. (그림15)
궁극적으로 21세기에 우리가 심사숙고 해야 할 일은 지구 온난화를 가속시키는 큰 계획, 도시를 짓는 일보다는 환경과 지역을 고려하는 작은 계획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다들 알겠지만 건축물이 만들어 내는 이산화탄소가 전체 이산화탄소 산출량의 4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도시 건축을 지향하는 것이 숙제라는 것이다. 큰 계획이 나쁘다, 좋다라고 단정 짓기보다는 연을 만들어 내는 ‘작은 계획’에 대해 고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각자의 실천적인 대안을 찾아가기를 제안하며, 강연을 맺는다.
녹취 정리/강권정예 jeongye골뱅이hotmail.com WIDE 2010 01/02
그림 1. 배다리, 인천 송도 지구와 서울을 잇는 산업도로를 만들기 위해 도시의 유서 깊은 지역을 삭제해 버렸다.
그림2. 인구 3백만을 위한 도시 계획안, 르 코르뷔지에.
그림3. 뉴욕의 보이는 도시, 보이지 않는 도시.
그림4. 4-1. 삼성로와 테헤란로 주변, 용산 시티파크와 한강변.
그림5. 송도 신도시.
그림6. ’명품 도시’ 인천의 환상도.
그림7. 자유공원으로부터의 신 풍경, 인천 갑문-월미도-송도 신도시.
그림8. 중국에 안착한 맥도널드와 스타벅스.
그림9. 외국 건축사들에 의한 언어의 바벨탑.
그림10. 입체 고가도로.
그림11. 공항 도시 게이트웨이.
그림12 .공항 도시 상하이.
그림13. 공항 도시 송도.
그림14. Manhattan Meatpacking Area – East High Railway.
그림15. 블루밍 트레인-도시의 향연(Blooming Train–Celebration Cities II), UIA 공모전 제 4지역 전문가 부문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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