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애사에서 평균 12년,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곳,
일터라면 정년 퇴임까지 30여 년의 시간을 보내는 곳, 바로 학교다.
사회화가 시작되고 가치관이 형성되며,
심성을 다지고 심미안을 보고 배우며 기르는 공간 역시 학교이다.
그래서 학교 건축의 설계는 주거만큼이나 인간에게 중요하고,
우리는 제대로 된 먹거리만큼 아이들에게
가짜가 아닌 진짜의 세상을 이야기해 줘야 할 필요가 있다.
건축가들은 그만큼 중요한 학교를 제대로 새로 짓는 대신,
학교의 후미지고 후줄근한 공간들을 찾아, 마치 게릴라처럼 바꿔 들어 간다.
그 동안의 학교 건축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일은
대부분 물리적인 건축물 위주로만 진행되어 왔다는 지적에 이르러,
교육 환경에 관계된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찾는다.
빠르게, 싸게, 나쁘게 학교를 짓는 동안
관행화 된 학교 건축의 발주방식, 관습화된 미의식으로 양산된 학교의 모습은
이제 평등이라는 이름의 속박에서 벗어나려 한다.
문화로 아름답고 행복한 학교 만들기
학교가 죽어가고 있다
시간이 멈춘 학교
많은 교육학자들이 학교의 공간 구조를 군대나 감옥에 비유한다. 운동장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적인 교사, 일자형 구조, 내부로 들어가면 중앙 코어 옆에는 교무실이나 행정실이 배치돼 있고, 내부에서 감시를 종합적으로 할 수 있는 원리다. 규모 면에서나 형태 면에서도 일률적이다. 신축되는 학교의 경우 평면이나 배치의 변화가 있지만 비교적 최근의 일들이고, 신축 학교라고 해도 재개발 지역이나 새로 만들어진 신도시가 아니고서야 흔치 않다.
대개 1960,70년대 부터 표준화 된 건축 설계를 적용해 동일한 학교들을 찍어내듯 대량으로 지으면서, 학교 건축의 문제들도 반복적으로 양산되었고 학교의 수명만큼 오래 되어 왔다. 교육 방식이 변화하면서는 교실 내 시청각 설비가 추가되거나, 창호 시스템이 교체되거나 하는 정도다. 오히려 훨씬 더 노후화되었으며, 일자형의 복도 공간이나 전형적인 학교 시스템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대로다. 이런 학교의 모습이 우리가 도시 공간에서 일상적으로 보는 여느 건물과는 괴리감 또한 크고, 이 속에서 우리는 의무적으로 12년을 보내야 한다.
교육 현장 일선에 있는 교사나 학교장들은 이러한 문제의 원인에 대해 현실적인 문제를 얘기한다. 교육부나 교육청의 학교 예산으로는 환경을 개선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질 못한다고 한다. 1년 예산 중에 절반 이상이 인건비, 나머지는 교과 활동 비용으로 사용하고 나면, 바닥이다. 학교 시설을 유지 보수 하는 것은 별도의 예산이 책정돼 있지 않아, 학교 운영비에서 아껴 써야 하고 교사를 확장할 때에도 특별 회계를 신청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또 과학실 관련 공사는 과학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부서에서, 도서실은 도서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영역별로 예산 지원을 받는다. 필요한 부분에 한해 예산을 지원 받기 때문에, 전체적인 학교 내의 환경 개선은 어렵다는 얘기다. 이러한 개선이 많은 학교에서 대부분 교과목실에 치우치고 있고, 그 외의 다양한 여가 학습이나 휴식 공간, 문화적인공간, 창의력이나 감수성을 자극하는 공간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사회는 학교를 지역 주민과 교류하는 ‘장’으로, 지역 사회의 중심 역할을 하길요구하는데, 학교는 그 틀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문제들은 새로 지어지는 학교에는 유예를 두자면, 문제는 이미 오래 전에 지어진 학교에서 발생한다.
프루크루테스의 침대
국공립 학교를 짓는 방식은 현상 설계, BTL, 가격 입찰에 의해 보통 이루어진다. 현상 설계라는 것도 제출물이 투시도를 없애거나 패널과 보고서가 간소화되는 추세이지만, 아직까지는 공모의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 여전히 부담을 주는 방식이다. 가격 입찰에 의한 방식이 비리에서 자유롭고 공정성과 투명성은 지켜지는 방식이라고 한다면, 좋은 설계자나 좋은 시공자를 선택한다거나, 공간의 질을 담보하기에는 분명 거리가 있다. 그 또한 입찰 응모만을 전문적으로 대신 하는 브로커들이 이미 등장한 것을 보면, 허울 좋은 명분이 되고 있다.
가격 4천만 원 이상의 설계에서 진행되는 PQ 방식은 재무 상태를 심사해서 참가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2천만 원 이하, 증개축 설계에서는 여러 학교를 번들로 묶어 하나의 사업으로 구성해 발주하고 있기도 하다. 수의 계약은 공정하지 못하니,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입찰 최저 금액을 맞추기 위해서라는데, 현실과 맞지 않는 것들일 뿐이다. 공공 건축물에서 일반적인 발주 방식인 턴키와 BTL 방식 역시 모두 건축 설계의 비중이 낮고, 공사비 절감이나 시공사와 설계안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결국 보편적이고 무난한 설계안으로 마무리 되기 쉽다. (와이드 vol.17 포커스 참조)
이러한 현실과 국가 건축 사업의 괴리가 학교에서는 건축의 실제 사용자와 설계자를 떨어뜨려 놓는 일이 된다. 가격 입찰에 따라 적격자로 선정을 하다 보니, 설계자의 역량이나 시공의 품질을 보장하기란 어렵다. 만약 학교 화장실 개선 공사를 한다면, 설계자가 누군지, 시공자가 누군지를 알지 못해도 공사는 이루어진다. 운이 좋아야 공사도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설계자는 실제 사용자의 요구나 문제들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지 못한 채, 보편적인 설계로 마무리 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정작 지어진다 하더라도 사용이 떨어지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거나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는 사이에 학교에는 학생들과 교사들은 사라지고, 더 싸고, 더 빠르게 지어져, 그래서 더 나빠져만 가는 학교가 남는다.
문화로 아름답고
행복한 학교 만들기
교육부나 교육청 발주의 학교 건축과는 별도로 진행되는 학교 공간 개조 프로젝트가 있다. 올 해 3년 째 계속 되고 있는 ‘문화로 아름답고 행복한 학교 만들기’는 이미 지어진, 그리고 오래 된 학교들의 공간적 문제점들을 점검해 나간다. 초, 중,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이미 2008년 5개 학교, 2009년 10개 학교, 2010년에는 총 9개 학교가 모습을 바꿨다.특히 화장실 리노베이션에 비중을 두던 예년과는 달리, 올해는 도서실, 방과후 교실, 휴식/놀이 공간 등, 다목적 공간의 문화 예술 공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문화 공간이란 것 자체가 결과물로, 바뀐 공간에서 문화적이고 예술 활동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또 하나는 방법과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름답고 행복한 학교 만들기’가 어떤 결과나 목적이라면, ‘문화로 학교 만들기’는 방법과 과정이 된다. 커뮤니케이션 학에서 흔히 말하는 커뮤니케이션으로서 문화(컬티베이션), 즉 건축 설계에서는 사용자와 설계자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설계 과정을 말한다. 그래서 ‘학교 만들기’의 설계 과정에서 꼭 이루어지는 것이 학생, 교사, 학부모들과 설계자와의 워크숍이다. 그림 그리기, 설문 조사, 브레인 스토밍, 밀착 인터뷰들이 진행되고, 이를 설계에 반영해 다시 사용자들과 피드백 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당장 그로 인한 변화는 저예산에 비해 눈에 띄게 차이 나는 공간적인 변화들이고, 학생들의 태도와 교사들의 변화다. 연구서에서는 ‘학교 만들기’에서 공간의 참여도가 높을수록 공간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것을 보고 하고 있다(신나미, 학교 공간 디자인 변화에 대한 학생과 교사의 인식 및 효과에 관한 연구, 문화체육관광부 연구보고서, 2009). 이러한 변화는 전체 학교에까지 영향력을 미친다거나 변화를 기대하는 일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겠지만, 적어도 한 학교 내에서의 영향은 주목할 만하다.
아름다운 공간이
아름다운 사람을,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다운 사회를
‘깨진 유리창 효과’라는 것이 있다.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공간에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엉망이 되는 것이다. 깨끗한 자동차는 멀쩡하지만, 깨진 유리창은 더 깨고 싶은 것이다. ‘깨진 유리창’처럼 학교가 공간적으로, 시각적으로 아이들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면, 결국 건축의 변화는 교육의 개혁과도 관련 깊어 보인다.
“장애인들에게도 공간 환경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청각 장애인일수록 음환경은 더 중요하고, 소리를 대신하는 시각적 자극이 공간에서도 필요합니다. 환경이 좋아지면 꿈이 커지고, 거꾸로 꿈이 커지기 위해서는 좋은 공간 환경이 필요한 거라고 봐요. 대개 장애 아동들은 끼리끼리는 잘 어울리지만, 밖에서 일반인들과는 그러지 못해요. 사회와 섞이는 방법을 어렸을 때부터 계속 시도해 보는 것이 중요하고, 되면 되는대로, 안되면 안 되는 대로 시행착오를 겪는 게 필요한 데 말이죠. 학교가 밝아지고 새로 생긴 ‘문화 자람터’에서 그런 변화들이 일어났어요. 문화 자람터에서 아이들은 밸리 댄스나 합주를 하고, 마술을 연습합니다. 이제는 페스티벌에도 참가하고 대외 행사에도 초청을 받기도 하죠. 자신을 내보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키워갈 수 있게 된 겁니다(윤필희 전 대구 영화학교, 현 광명학교 교장).”
“학교가 공포 영화의 배경으로 많이 등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학교가 낙후되었고 뒤쳐져 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학교의 시설은 가장 현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아파트의 시설들이 얼마나 잘 돼 있나요. 학교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면, 학교에서의 교육 효과는 떨어질 수 밖에 없어요. 학교에서의 교육이 자연스럽게 앞서 가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도록 해야, 미래 사회 생활을할 때에나 가정을 꾸리게 될 때에도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공간 환경에서도 마찬가지이겠죠. 공간의 색감도 그렇고 심미안을 기를 수 있는 디자인이어야 하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보고 배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학교 공간이 쾌적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돼야지만, 수업 효과도 그만큼 높거든요. 학교의 환경은 음으로 양으로,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고 건축 자체가 교육이기 때문에, 학교 건축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신춘희 대청중학교장).”
“무엇보다 학교는 학생 중심의 공간이 되는 게 중요합니다. 대개 관리 차원에서 설계를 하고, 관리 차원에서 짓고, 관리 차원에서 유지 관리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힘들어요. 아이들 입장에서 학교를 만들려면 문이 다 열려야 해요. 그것은 아이들이 어디나 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학교에서 중요한 부분은 늘 닫혀 있고, 닫혀 있으니 돌아가야 하는 거죠. 또 교실 창을 위쪽으로 다는 것은 교실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에요. 누군가 그 안에서 수업을 한다면 분명히 신경이 쓰이는 데도 말입니다. 경복여고의 경우 교무실의 창은 천장에서 보통 사람들의 허리 아래로까지 내려와요. 지나는 학생들과 교사들이 자연스럽게 눈이 마주치기도 하고, 교사와 학생의 시선이 열려 있게 되거든요. 닫아 놓으면 부담이 되고, 그러면 감시가 되는 거죠. 복도에서 뛰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학교의 평면이 직선인 것을 문제 삼아야 한다고 봐요. 평면이 휘어져 있으면 소음이 그다지 크지 않거든요. 복도에 게시물을 붙여 아이들에게 읽어야 할 것을 강제할 것이 아니에요. 십 년 전과 아이들의 생활 문화가 달라졌으니, 동선도 달라지고 눈높이에 맞춰서 색깔도 바꿔주고, 학생들의 요구에 맞는 학교 건물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박영철 경복여고 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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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들은 왜 학교로 갔는가
<인터뷰>
와이드 11/12를 보세요~
순천 성남초등학교
위치: 전라남도 순천시 남정동
면적: 125.6㎡
재료: 구조–목재, 마감 - 자작나무 합판, 카펫, 수성페인트 도장
디자인 디렉터: 오영욱
안양 삼일초등학교
위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월피동
면적: 128.15㎡
마감: 도장, 데코타일, 인조잔디
디자인 디렉터: 김선철, 김주연
제주 표선초등학교
위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
면적: 85㎡
마감: 우드핏 타일, 미송 합판, 석고보드, 유성 페인트
디자인 디렉터:현군출
대구 영화 학교
위치: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마감: 자작나무
디자인 디렉터: 김현진
서울 경복여자고등학교
위치: 서울시 강서구 등촌동
면적: 273.94㎡
마감: 수성 페인트, 강화마루, 양방향 접이식 도어
디자인 디렉터: 윤남희
서울 대청중학교
위치: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면적: 186㎡
마감: 무절 미송 합판, 온돌 설비+강화마루, 석고보드, 지정색 V.P 마감
디자인 디렉터: 이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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