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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권태훈의 50로그: 타워 빌라 프로젝트

새책/└ 프로젝트 티키타카 S2+S1

by 정예씨 2025. 9. 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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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건축,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성찰하는 건축적 다큐멘터리 문학     


한국의 다세대 주택, 통칭 ‘빌라’라고 더 불리는 주거건물은 차곡차곡 쌓여 고층의 타워형 건축이 되어간다. 그리고 그 욕망의 이름을 따라 ‘타워 빌라’ 프로젝트라고 명명된다.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삶과 건축,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을 성찰하며 건축적 실천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삶과 건축,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성찰하는 건축적 다큐멘터리 문학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전반부는 타워 빌라 프로젝트의 참조 사례들로, 저자 해석이 덧부쳐진다. 18세기 영국 건축가 존 소안 경의 박물관에서부터, 양식이나 형태에 국한되지 않는 동시대 건축가들의 ‘파스티치오’, 초현실주의자들의 실험적 놀이가 번안된 도시 건축 작업 등이 소개된다. 또 사진가 원범식의 ‘건축 조각’ 시리즈 함께 창조적인 해석 방법/태도에 대한 질문이 더해진다.

후반부는 타워 빌라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을 50개의 로그기록으로써 보여준다. 50 로그는 짧은 에세이와 건축 도면, 사진, 3D 모델링 결과물 등으로 구성되며, 타워 빌라 프로젝트의 단계별 작업내용과 과제, 그로 인해 파생되는 사회 문화적 가치/의미, 나아가 작업 주체인 건축가의 자기비판과 정서까지 담고 있다. 이는 마치 컴퓨팅 애플리케이션의 로그파일이 전체 시스템을 진단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과 닮았다.

특히, 건축 도면은 집요함을 넘어 집착에 이르는 건축가의 창작 과정을 드러내며, 건축이 단순한 물리적/기능적 해법을 넘어 깊은 사유의 결과물임을 시사한다. 또한 압도적인 드로잉 역량의 결과물, 건축 도면 그 자체가 예술품으로 평가될 만하다.

오랫동안 일상 속 건축물의 드로잉 연구를 계속해온 저자 권태훈은 출판물 <서울 파사드>, <빌라 샷시>을 통해, 평범하고 이름 없는 건축물들을 연구의 대상이 되도록 수면 위로 올려 놓았다. 전작이 객관적 기록물이었다면, 그 연장선에 선 타워 빌라 프로젝트는 건축가로서의 갈등과 자전적 이야기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의 표현대로 ‘빌라 로톤다와 한국 빌라’, ‘오닉스 대리석과 꽃무늬 벽지’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뻣속까지 한국인’인 건축가가 갖는 이중적 정체성은 이 책을 시종일관 이끌어가는 주요 모티프다.  

16세기 베네치아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의 ‘빌라 로톤다’, 그리고 21세기 한국의 집장사 집 ‘한국 빌라’. 한국 건축가들은 ‘빌라’라는 말을 혼용한다. 하나는 건축의 전범으로, 다른 하나는 부동산 매물로. 저자는 이러한 양의성에 착안하여, 이름만 같은 두 ‘빌라’의 언어를 차용한다. 서로 다른 문맥에서 쓰이던 ‘빌라’의 언어를 한 단어에서, 점차 한 문장, 한 단락씩 가져와 조합하고 건축화한다. 마치 파편화된 일상이 모여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처럼.  

그래서인지 이 프로젝트의 전개가 그리 논리적이거나 선형적이진 않다. 연구와 디자인의 관계도 딱히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학교교육을 통한 타자화 훈련과 오랜 습성이 건축에서 삶을 도려내도록 하는 건 아닌지 묻는다. 그러고는 쉽지 않은 지혜를 넌지시 던진다. “부디 건축적 심각함에 삶 전체가 매몰되지 않기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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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미리보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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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자신을 타자화하는 데 익숙한 건축가들은 그 타자성을 이용해 건축을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스스로가 만드는 건축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우기란 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만약 건축가의 존재가 지워진 무색무취한 건축이 옳다면, 굳이 내가 할 이유는 무엇일까. 꼭 내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내가 (타자가 아닌) 나이기 때문이다.”  — 프롤로그: 연대기적 타워, 자전적 프로젝트 중에서, 4쪽. 

“두 번째 갈등은 건축가로서의 정체성이었다. ‘빌라 로톤다’와 ‘한국 빌라’라는 두 세계, 즉 이론과 실천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인으로서 서구 건축을 학습한 나의 이중적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이런 정체성 갈등이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닐 터이다. 한국에서 자라고, 한국에서 건축을 배우며, 한국에서 실무를 경험한, 소위 ‘뼛속까지 한국인’인 내가 겪는 이 정체성의 갈등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프롤로그: 연대기적 타워, 자전적 프로젝트 중에서, 5쪽.  

“역사적 조각들을 재배치하여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건축적 가능성” — 세 개의 파스티치오 중에서, 13쪽. 

“만약 당신과 내 머리속에 들어있는 모든 책이 다 같다고 해보죠. 그렇다 할지라도 그것들이 재구성되어 표현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것은 문화적 차이죠. 결국 당신의 머리속에 있는 모든 정보들은 당신만의 해석을 통한, 당신만의 고유한 버전입니다. 왜 오리지널리티에 대해 고민합니까? 당신의 머리속 도서관을 통해 연결되고 재해석된 당신의 건축은 그것으로 오리지널입니다. 그것들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 창의적이고 영감을 주는 병치: 존 소안 경의 박물관, 애덤 카루소와의 인터뷰에서, 14쪽. 

“원본과 변형. 겉과 속으로 나뉜 두 세계를 서로 대립하게 만든 뒤, 다시 그 둘을 잇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을 평면 속에서 발견했다. 안에서 바깥을 향해 내민 8개의 둥근 발코니는 원본에는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이상을 현실에 안착시키기 위한 하나의 변형이다.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오직 개인의 해석에 의존하는 ‘원본에 대한 변형’은 여러 가지 생각들을 불러일으킨다. 불과 50~60년 전을 살았던 한국 건축가들의 시도, 그들이 품었던 이상과 마주했던 현실, 그리고 이 땅에 남긴 것들에 대해.” — Log 25 중에서, 50쪽. 

“흐릿해져가는 맥락. 한국의 빌라든 서양의 궁전이든, 집장사의 집이든 건축가의 작품이든, 과거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건축에서 다양한 참조물을 대하는 나에게 대상의 (역사적) 맥락은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원본은 그 자체로 고유한 가치를 지니지만, 변형된 원본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 무엇보다 작업 주체의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읽힐 수 있다.” — Log 46 중에서, 73쪽 

“부모가 미국으로의 이주 이후, 낯선 재료로 익숙한 음식을 다시 만들어가던 경험을 에드워드 리는 회고한다. 그들은 한국 음식을 지키려 애쓰면서도 토마토, 가지, 생소한 배추와 양념 같은 현지 재료로 조리 방식을 조정해야 했다. 이 과정은 단순한 타협이 아니라, 정체성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실천이었다.. . (중략)... 건축도 혼종성과 번역의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를 다시 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어떤 재료로 어떻게 조리 방식을 바꿀 수 있을까? — 다시, 부산물 중에서,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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